카드不實 '예고된 재앙'…업계 무분별확장, 정부 땜질정책

  • 입력 2003년 3월 17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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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업계의 무분별한 영업 확장과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 강화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 실패’ 때문에 신용카드사의 이용자와 투자자 모두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신용카드업계의 부실은 SK글로벌 사태와 미-이라크전쟁 임박 등으로 취약해진 금융시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신용카드사는 ‘베스트 직장’으로 손꼽혔다. 연봉의 최고 40%를 상여금으로 준 회사도 있었고 작년 1·4분기(1∼3월)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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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국민카드와 외환카드가 적자로 돌아섰고 대부분의 카드사가 4·4분기(10∼12월)를 맞으며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전문가들은 ‘카드업의 곤경’ 원인에 대해 “회원을 무분별하게 모집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카드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면서도 “정부의 조율마저 미숙해 ‘연착륙’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내수 진작을 위해 풀어준 고삐〓1994년 4월 정부는 굵직한 규제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수출이 살아나지 않자 내수로 경기를 끌어올리려는 목적이었다.

첫번째는 월 70만원이었던 개인의 현금서비스 한도를 없앤 대신 개인별 신용 정도에 따른 차등화를 허용했다.

즉각 카드사들은 한도를 수백만원대로 올렸고 2년 만에 현금서비스 한도는 평균 230만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조세 수입을 늘린다는 명분에서 신용카드 사용금액에 대한 세제혜택도 도입됐고 영수증으로 복권을 추첨하는 영수증 복권제도 도입했다.

무엇보다 2001년 7월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된 ‘가두 모집 제한의 백지화’ 등 무분별한 영업활동 방치도 카드업계 부실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높다. 금융당국이 신용대출의 급증에 주목, ‘가두 모집’을 제한하려고 했으나 규개위는 △카드사의 영업을 원천봉쇄할 수 있고 △다른 금융사업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모집인 10만명의 일자리 등을 들어 반대했다.

▽메카톤급 규제 정책〓작년 5월 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속출하는 등 부작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자 금융당국은 업계에 대한 전면 수술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충당금 비중을 올리고 △현금서비스 비중을 2004년까지 50% 이하로 낮추며 △현금서비스 수수료를 내리는 등의 조치를 내놓았다.

S증권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위축되고 불특정 다수 채무자에 대한 신용정보가 공개되는 시점에서 갑자기 무리한 조치를 내놓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급격히 올린 충당금 규정. 미래에셋증권 한정태(韓丁太) 애널리스트는 “작년 한 해 동안 카드사에 대해 세 차례나 충당금 규정이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카드의 2001년 대손상각과 충당금은 4282억원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1조5482억원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자산은 33% 증가했다.

현금서비스 비중을 무리하게 줄이면서 장기 무이자할부가 급증하는 등의 부작용도 나왔다.

또 정부가 개인파산제도와 개인워크아웃을 확대해 개인들의 ‘모럴 해저드’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개인 채무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카드사뿐 아니라 개인도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드사들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부는 17일 다시 현금서비스 수수료를 올리는 등의 정상화 방안을 내놓았으나 우량고객에게 비용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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