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프리미엄 '제로시대' 오나

  • 입력 2003년 3월 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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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떴다방’최근 일부 아파트가 높은 청약경쟁률을 과시하고 있지만 실제 분양권 프리미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경기 평택시 우림건설 모델하우스 주변에 길게 늘어서 있는 ‘떴다방’들의 이동식 사무소. 평택=고기정기자
비어 있는 ‘떴다방’최근 일부 아파트가 높은 청약경쟁률을 과시하고 있지만 실제 분양권 프리미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경기 평택시 우림건설 모델하우스 주변에 길게 늘어서 있는 ‘떴다방’들의 이동식 사무소. 평택=고기정기자

《“저층은 300만원이면 분양권을 빼줄 수 있어요. 이 정도면 손해보고 파는 거예요.” 4일 경기 평택시 안중·현화택지개발지구. 지난달 말 이 곳에 아파트를 분양한 우림건설 모델하우스에서는 분양권 매매를 알선하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호객행위가 한창이었다. 이 아파트는 경기 외곽지역에서는 드물게 1순위 청약에서 평균 3.3 대 1로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분양권 프리미엄은 예상보다 낮은 수준.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고 1200만원을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 거래가격은 이보다 한참 낮다”며 “떴다방들이 설치는 통에 일반인들의 거래는 많지 않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청약률과 프리미엄이 따로 노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청약률은 높지만 프리미엄은 바닥권에 머물고 있는 것. 부동산 업계에서는 ‘제로(0) 프리미엄’이 일반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약률과 프리미엄이 따로 노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청약률은 높지만 프리미엄은 바닥권에 머물고 있는 것. 부동산 업계에서는 ‘제로(0) 프리미엄’이 일반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약률 높아도 프리미엄은 ‘제로’〓안중·현화지구 우림아파트 분양권 프리미엄은 평균 600만원선. 그러나 실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프리미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아파트에는 총 2484명이 청약했다. 이 가운데 평택 거주자는 214명뿐이다. 나머지는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원정’온 투자자인 셈.

평택과 주변지역을 잇는 교통망은 서해안고속도로가 유일하다. 그런데도 다른 지역 거주자들이 대거 몰린 건 분양권 프리미엄을 노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지에서는 서울 등 인기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이자 떴다방들이 대거 이 곳으로 몰려 왔다고 해석한다.

떴다방들이 청약을 위해 불법으로 사들인 청약통장 가격은 600만원 안팎. 따라서 분양권 프리미엄 600만원은 떴다방 등 투기세력이 들인 초기비용일 뿐이다. 결국 실제 프리미엄은 일부 로열층을 제외하곤 거의 없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도 마찬가지. 지난달 중순 청약을 받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주상복합아파트 ‘태영 데시앙루브’의 청약 경쟁률은 64 대 1. 서울에서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떴다방이 다시 나타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현재 이 아파트의 프리미엄은 50만원에도 못 미친다. 분양가 수준에 나와 있는 매물도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짓는 주상복합 ‘성원 상떼빌’도 청약경쟁률이 35 대 1에 달했다. 하지만 일부 가구를 빼곤 프리미엄이 없다. 시공사가 밝힌 계약률은 80%선이다.

▽왜 이러나〓새 아파트 분양권 시장이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보다 분양가 자체가 너무 높기 때문.

올해 서울에서 나온 아파트값은 평당 1184만원에 이른다. 작년보다 37%나 올랐다. 경기도도 작년보다 24%나 뛰었다.

분양권 프리미엄은 새 아파트값과 기존 아파트값의 차이에서 생긴다. 새 아파트값이 기존 아파트값을 넘어서면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기존 아파트값이 안정세를 유지하면 분양권 프리미엄의 상승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조삼모사(朝三暮四)’식 분양가 납부 조건도 청약률과 프리미엄간 격차를 벌이는 요인. 최근 나오는 아파트 대부분은 중도금 전액을 무이자 융자로 대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건설회사가 이자를 대신 내준다는 설명. 아파트 당첨자는 계약금만 내면 완공 때까지 추가 부담이 없다.

따라서 떴다방들이 계약금만 갖고 대거 청약에 나선 뒤 헐값에 분양권을 팔아 버린다. 그러나 중도금 이자는 사전에 분양가에 반영돼 있다.

여기에 나라 안팎 경제가 불확실한 것도 프리미엄 하락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언론이 청약률만 갖고 분양시장이 살아난다는 성급한 보도를 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국내외 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새 아파트를 사려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말했다.


평택=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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