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10년을 미리보는 눈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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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정부가 디지털 이동통신방식으로 미국 퀄컴사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채택하자 시민단체 등 여러 곳에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유럽식인 GSM 방식이 표준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아직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는 CDMA를 채택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왜 하필이면 미국이냐”는 등 이유도 다양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상용화에 성공한 방식을 도입하면 기술 종속을 피하기 어렵고 국내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며 맞섰다.

12년이 지난 2003년 3월. 산업자원부는 2월 한 달 동안의 수출실적을 집계한 결과 휴대전화가 대부분인 무선통신기기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반도체를 제치고 수출 1위 품목으로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의 무선통신기기 수출액은 13억5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3% 늘어난 반면 수출을 주도해 온 반도체는 6% 증가한 12억달러에 그쳤기 때문. 수출 1위 자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주요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수출이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어 올해 총 수출이 15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결국 이는 12년 전 정책 결정자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ETRI는 96년 CDMA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국내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CDMA 시장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시장을 세계로 넓혀가고 있다.

지금은 GSM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삼성전자측도 “만약 그때 GSM에 안주했다면 외국 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장악해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키울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제품에는 수명이 있다. 휴대전화도 언젠가는 쇠락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 따라서 한국 경제를 떠받칠 제2의 히트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와 업체 모두가 적어도 10년을 미리 보고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디지털TV의 운용방식 결정에서도 일부 시민단체와 눈앞의 이익을 앞세운 일부 이해당사자들의 주장보다는 미래의 한국 경제가 우선돼야 한다. 넓고 길게 보아야 1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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