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의 경영과 인생](8)'줄 수 있어야 살 수 있다'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7시 55분


#‘주고받음’의 삶, 쉽지 않다

‘너 살고 나 살고’식 ‘주고받음’의 이상적인 관계는 양봉원과 과수원 사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양봉원의 벌들은 과수원을 찾아가 꿀을 따오고, 과수원 나무들은 벌이 해주는 가루받이로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양봉원과 과수원은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받으면서 ‘너 살고 나 살고’식 삶을 지속한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고객을 찾아 주고받음의 관계를 정립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실제 있었던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어느 발명가가 ‘계란 프라이 자판기’를 개발했다. 동전을 넣으면 계란이 내려와 깨어지면서 껍질은 제거되고 가열된 철판 위에서 프라이 되는 장치였다. 특허까지 따냈으나 이것을 사업화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발명가 자신이 사재를 털어 몇 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자판기에서 나오는 계란 프라이를 사 먹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란 프라이 그것만으로는 식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유 같았다.

이처럼 고객이 느끼는 필요와 정서에 관한 철저한 조사 없이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사업에 투자하면 실패하기 쉽다.

정부와 국민,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가정에서는 부부사이가 모두 고객관계이고 주고받음의 현장이다. 고객과 주고받음의 관계에서 성공하려면 고객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좋아함’의 깊은 뜻

명화 쉐난도에서는 ‘사랑한다(love)’는 말과 ‘좋아한다(like)’는 말이 엄격히 구별되고 있어 인상적이다. 앤더슨씨의 딸 제니를 사랑하는 청년 샘이 앤더슨씨를 찾아와 ‘제니’와 결혼하고 싶으니 허락해달라고 청한다. 앤더슨씨가 “왜 제니와 결혼하려고 하는가”라고 묻자 청년은 “제니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앤더슨씨는 “그것은 충분한 이유가 못돼”라고 답한다. 당황하는 샘에게 앤더슨씨는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지” 하며 그가 터득한 삶의 진실을 가르친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하게 되면 그와 하룻밤을 지내는 일조차 지겹고 싸늘하게 느껴지는 거야. 그런 밤을 지내고 나면 이튿날 아침엔 경멸만 남지” 하면서 사랑함보다 좋아함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인생을 달관한 경지에서 사위가 될 사람에게 들려 준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젊은 남녀간의 사랑이란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신비로운 힘에 의해 끌리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렇게 신비로운 사랑으로 출발한 남녀가 살아가면서 서로를 좋아하게 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 우리는 흔히 외모만 알고 있는 이성을 흠모하며 열렬히 구애, 결혼하고 살다가 상대방이 싫어지는 일이 생긴다. 취미와 정서, 인격과 가치관 등 내면적 깊이의 세계가 그 사람을 계속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선 좋아하지 않지만 결혼했기 때문에 계속 사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개인의 행복이란 차원에서는 마음 아픈 일이다.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이 사랑할 수 있는 조건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힘은 ‘좋아서 끌리는 힘’, 즉 매력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배반자를 나쁘다고 말하지만 배반당한 사람에게도 책임은 있다.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아 둘 만한 자기 매력을 기르지 못한 것은 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자기를 무작정 좋아해 주기만 바라는 것은 기업이 제 멋대로 제품을 만들어 놓고 고객이 안 사준다고 푸념하는 것과 같다. 고객의 필요와 기호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풍요로운 사회가 될수록 고객의 필요와 기호를 파악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줄 수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명제는 평범하지만 확실한 진리로 남을 것이고, 줄 수 있으려면 고객이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줘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고객이 반가워하지도 않고 자원낭비만 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고객의 필요와 아픔, 그리고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인간조건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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