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공정공시제도 헷갈려요"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8시 08분


증시 투자자들에게 공평한 정보 공유의 기회를 주기 위해 1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공정공시제도’가 적용 과정에서 모호한 부분이 많아 기업 실무자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더욱이 최고 경영진은 자기 기업이 ‘시범 케이스’로 적발될 것을 우려해 임직원들에게 사안의 경중과 관계없이 ‘무조건 입 단속’을 주문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전전긍긍하는 기업들〓주요 기업들은 공정공시 시행과 관련해 임직원들의 대외 접촉을 자제시키고 입 단속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일부 기업 관련 수치가 보도된 뒤 해당 사업 담당 사장이 임원을 불러 “앞으로 언론 등 외부의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안부만 전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또 공정공시제도 관련 내부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경영에 관한 주요 정보를 흘려 회사에 누를 끼치는 사람에게는 중징계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전 사원을 대상으로 공정공시 제도의 개요와 언론 취재 대응 요령 등을 알리고 “모호한 부분이 있으면 IR팀이나 홍보팀과 즉시 상의하라”고 지시했다.

▽기업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기업들은 어떤 내용을 공시에 올리고 어떤 내용을 올리지 않을 것인지 몹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증권거래소 등 담당 기관에 문의해도 모호한 답변이 많아 “일단 공시는 해 두고 보자”는 식으로 ‘보험성 공시’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동차부품업체인 현대모비스는 증권거래소에 ‘구두’로만 취재에 응했을 때와 자료를 제공했을 때를 비교 문의한 결과 “말로 한 것은 공시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내용을 문건으로 전달하면 공시를 해야 한다”는 다소 ‘헷갈리는’ 답변을 받았다.

SK㈜의 관계자는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시 여부를 기업이 알아서 판단하고 책임도 모두 기업이 지라는 식은 곤란하다”면서 “공정공시 관련 부처나 관리 감독자가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제도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공시 제도:기업의 재무구조나 경영상의 내부 정보 등을 애널리스트 등 외부인에게 발설했을 때 바로 공시를 통해 일반투자자에게도 알리는 제도다. 증권 당국은 공정공시를 2회 위반할 경우 일반공시 의무를 1회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하는 등 제재할 계획이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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