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칠레 FTA타결/득실]무역수지 한해 4억달러 개선 기대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8시 06분


이성주 외교통상부 다자통상국장이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
이성주 외교통상부 다자통상국장이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타결됨에 따라 한국은 ‘FTA를 맺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는 이름표를 뗐다. 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국제무역질서의 두 축을 이루는 FTA에 늦게나마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한-칠레 FTA협상은 한국이 세계 13위라는 무역규모에 걸맞지 않은 ‘통상(通商)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세계적인 농업 강국을 첫 FTA 상대국으로 고른 점, ‘만만한 상대’라고 본 칠레와의 본격협상을 3년이나 끌 정도로 부족한 협상력, 알맹이는 빼놓고 정치적 일정에 쫓겨 협상을 타결한 점, 협상 막판에 드러난 관련 부처간 난맥상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칠레의 경제규모는 한국보다 훨씬 작다. 그러나 국내 관련산업은 이번 FTA타결에 따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적잖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수출 증가 예상되는 공산품〓정부는 휴대전화 자동차 철강(파이프) 자동차 부품 등 대(對)칠레 수출의 84%를 차지하는 4400여개 품목이 5년 내에 관세가 없어져 수출 증대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업 전체 수출이 연간 6억3600만달러 늘어나 예상 수입증가액 2억500만달러보다 커 4억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특히 칠레 시장의 26%로 점유율 2위인 자동차는 ‘FTA 효과’가 나타나면 1위인 일본(36%)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또 한 해 20억∼30억달러에 이르는 칠레의 정부조달 시장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칠레는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및 메르코수르(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협정 회원국들과 FTA를 맺고 있어 칠레를 통한 우회 진출 효과도 있다는 설명이다.

▽농산물 분야의 피해 불가피〓쌀 사과 배를 제외하고 상당수 품목에 최대 16년의 관세철폐 유예를 두거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이후로 논의하기로 해 피해는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것으로 농림부는 전망했다. 특히 WTO 규정보다 쉽게 발동할 수 있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도 일부 안전판이 될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과일을 위주로 한 칠레산 농축산물 수입 증가에 따른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대부분의 과일에 45%가 넘는 관세를 부과해 ‘간신히’ 국내 시장을 지키고 있는데 관세가 낮아지는 시점부터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

관심 품목은 포도와 복숭아. 계절관세를 부과해도 포도 농가의 소득은 2004년 29억원, 2010년에는 2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이 연구원은 예상됐다. 10년간 균등하게 관세를 내리다 없애는 복숭아는 칠레산 식물에 대한 검역이 해제되는 2008년부터 수입이 시작되면 복숭아농가 피해가 그해에만 148억원, 2010년에는 229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때문에 농민단체들은 한-칠레 FTA를 계속 반대한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김휘승(金輝承) 정책실 대리는 “모든 농민이 합심해 국회 비준을 막겠다”고 말했다.

▽협상이 남긴 문제점과 과제〓양국 정상 선언으로부터 약 4년, 본격협상 3년이라는 우여곡절을 거쳐 협상은 타결됐지만 많은 과제를 남겼다. 협상 초기에는 농민들에게 협상 진행과정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반발을 샀다. 가장 ‘민감한 분야’인 농업에 대해 내부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막바지에 현안으로 등장한 ‘금융시장 개방’ 문제를 놓고는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간에 사전 의견 조율이 거의 안 되는 등 통상협상에서 문제점이 다시금 드러났다.

협상에 들어가기도 전에 “가서명에 이를 것”이라는 등 조급함을 드러내 협상력을 약화시킨 것도 협상 테크닉의 미숙함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자주 지적돼 온 대외 통상교섭조직 개편 논의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칠레 관세철폐 합의 내용
철폐 유형 한국 수입품 칠레 수입품
즉시 배합사료, 사료첨가제, 밀, 토마토, 양모, 종우,

종돈, 열대어, 금잉어

자동차, 휴대전화기, 컴퓨터,

기계류, 경유, PVC, 필름

5년 후 양고기, 당류,면 류, 연어, 참치 폴리에틸렌, 자동차부품, 전기전자
7년 과실주스(포도·딸기), 복숭아 통조림,

종자용 옥수수, 칠면조 고기, 콩나물

원심분리기, 전기케이블, 낚시대
9년 키위·망고 등 열대과실 주스
10년 복숭아, 돼지고기, 단감, 홍어, 정어리,

명태, 갈치

타이어(산업용), 자동차배터리,

진공청소기, 섬유·의류, 신발류

계절관세 포도
13년 타이어(승용차·버스), 조명기구
16년 배 가공품, 조제분유
관세율쿼터(TRQ) 7년 후 칠면조
TRQ,DDA 이후 논의 소고기, 닭고기, 유장, 자두, 감귤
DDA 이후 논의 고추, 마늘, 양파, 낙농제품, 육우
제외 쌀, 사과, 배 세탁기, 냉장고

▼협상내용 뭘 담았나▼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한국이 칠레에서 수입하는 공산품 중 전기동(銅)을 제외한 펄프 철강 및 일부 석유화학제품 등 모든 공산품의 관세가 발효 즉시 철폐된다. 전기동은 7년 후 관세를 없앤다.

칠레에서 수입하는 농산물 중 종우 종돈 사탕수수 등은 발효 즉시, 당류 면류 등은 5년, 복숭아 통조림과 종자용 옥수수 등은 7년 등 연차적으로 관세를 없앤다. 쌀 사과 배는 협상 품목에서 제외돼 관세 철폐 대상에서 빠졌다.

칠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20%가 넘는 포도는 한국이 포도를 생산하지 않는 11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만 계절관세를 물리다 10년 후에 없애기로 했다. 나머지 기간에는 현행 관세가 유지된다. 쇠고기 닭고기 자두 감귤 등은 물량 제한과 관세 부과를 함께 하는 ‘관세율 쿼터(TRQ)’를 적용한 뒤 도하개발어젠다(DDA) 이후에 논의키로 했다.

또 칠레에서 수입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와는 별도의 ‘양자간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인정키로 했다. 즉 수입에 따른 피해와 인과관계 증명 등의 절차 없이도 한국이 ‘급격한 수입증가’만을 이유로 언제든지 발동할 수 있다.

수산물 분야에서는 칠레산 수입의 55%를 차지하는 어분과 정어리(양식용 먹이) 등 36개 품목만 10년 내에 관세를 없앤다. 다른 350여개 품목은 발효 즉시, 또는 5년 이내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한국이 칠레로 수출하는 공산품 중 휴대전화 자동차 컴퓨터 등 2300여개 품목의 관세를 협정 발효 즉시 없애기로 했다. 또 자동차부품, 폴리에틸렌, 일반기계류 제품 등 2100여개 품목은 5년 내에 관세를 철폐한다. 그러나 세탁기와 냉장고는 제외됐다. 금융기관의 투자 등 금융서비스 시장도 개방 대상에서 일단 빠졌다.

협정에는 이 밖에 무역규범, 정부 조달, 지적재산권, 동식물 검역 관련 규정 간소화 등이 포함됐다.

한국-칠레 FTA 협상 일지
▽1998년 11월 자유무역협정(FTA) 첫 대상국으로 칠레 선정
▽1998년 11월 한국·칠레 정상회담 FTA 추진 합의
▽1999년 12월 제1차 협상(산티아고)
▽2000년 2∼3월 제2차 협상(서울)
▽2000년 5월 제3차 협상(산티아고)
▽2000년 12월 제4차 협상(서울)
▽2001년 10월 APEC 정상회담(상하이), 협상 조기타결 입장 확인
▽2001년 6월, 10월 한국 통상교섭본부장과 칠레 외무장관간 회담, 협상재개합의
▽2002년 2월 양허안 협상재개를 위한 고위급 회의(LA)
▽2002년 8월 제5차 협상(산티아고)
▽2002년 9월 상품양허안 별도협상(제네바)
▽2002년 10월 제6차 협상(제네바), 금융·서비스 부문 시장 개방 논란
▽2002년 10월24일 금융부문은 4년 뒤 재협상하는 최종안 타결

(자료:외교통상부, 산업자원부)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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