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널뛰는 하이닉스 주가 아무도 몰라

  • 입력 2002년 7월 11일 18시 36분


9일째(거래일 기준) 상한가를 기록한 후 11일 오전엔 상한가, 11일 종가는 하한가.

업종은 한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반도체. 거래량은 거래소 전체의 절반을 웃돌기도 한다.

연일 화제가 되고 애널리스트가 술렁일 만하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이유도 모르겠고 할 말도 없다”며 아예 외면한다.

하이닉스반도체 이야기다. 하이닉스는 투자자나 투자전략, 기업내용 등이 증시의 일반 기업들과 전혀 다르다. 증권거래소, 코스닥에 이은 또 하나의 시장이다. 동원증권 강성모 투자전략팀장은 “하이닉스라는 주식은 한국 증시에 없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엄연히 실존하는 우리 증시의 현실이다.

▽또 하나의 시장〓증시는 △투자자 △기업 △애널리스트 등이 함께 움직이는 곳이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다르다.

우선 애널리스트가 없다. 누구도 적정주가나 목표주가를 말하지 않는다. 기업분석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 포기한 상태다.

투자자도 거의 없다. ‘데이트레이더’라는 투기꾼만 모여 있다. 거래의 90% 이상이 데이트레이더에 의한 것이다. 그들 스스로 하이닉스에 중독된 도박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투자 대상인 기업이 없는 셈이다. 회사가 발표하는 실적 등 펀더멘털이 주가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가치보다 부채가 훨씬 커 사실상 파산 상태다. 매각도 불투명하고 독자생존은 더욱 어렵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기업의 실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대우증권 정창원 연구원의 말이다.

증시에서 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거래소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총 발행주식수는 249억6572만7000주. 이 중 하이닉스의 주식 수는 52억3997만2000주로 거래소 전체의 21%에 이른다.

거래량은 더하다. 7월4일 거래소 총 거래량은 14억2059만주로 이 가운데 70.7%가 하이닉스반도체였다. 7월 들어 코스닥시장의 전체 거래량이 하이닉스 거래량을 웃돈 날은 3일에 불과했다.

강성모 팀장은 “하이닉스 때문에 한국 증시의 각종 통계가 왜곡되고 있다. 하이닉스를 빼고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만의 시장〓전문 데이트레이더 최모씨(28)가 6월 사무실에서 거래를 하고 있었다. 컴퓨터는 두 대를 사용하지만 거래하는 종목은 단 하나, 하이닉스였다.

주당 340원에 1만주를 매수한 직후 그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하이닉스가 독자 생존으로 방향을 정했다는데 사실인가요”라는 글을 올렸다. 동시에 옆 컴퓨터에서 산 가격보다 5원 높은 가격에 매도주문을 냈다. 이른바 ‘작전’이다.

그가 올린 글 덕분인지 몇 분 뒤 주가는 올랐고 최씨는 주당 5원의 이익을 남기고 주식을 팔았다. 그는 하이닉스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며칠 뒤 다시 최씨의 사무실을 찾았다. 거래가 시작되자 주가는 하한가인 325원. 최씨가 1만주를 매수했다. 몇 초가 지나자 주가가 꿈틀거리며 330원으로 하한가를 탈출.

“335원에서 때릴 겁니다(팔겠다는 뜻).”

주가가 335원까지 오르자 최씨는 바로 팔아치웠다. 이후 주가는 340원까지 올랐다.

“조금 더 기다렸으면 좋았을 텐데….” 기자의 말에 최씨는 “괜찮습니다. 어쨌든 먹었으니까요”라며 씩 웃었다.

▽시장을 왜곡하는 거대한 폭탄〓증시에서는 “하이닉스를 도박업종으로 새로 분류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데이트레이더 최씨는 “하이닉스 투자는 대담성과 질긴 승부근성이 필요해 도박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등락 폭이 커 하루에 30%를 먹기도 한다. 2년 새 주가는 150분의 1로 떨어졌지만 원금을 두 배로 불린 사람도 꽤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하이닉스에 맛을 들이면 다른 주식은 재미가 없다. 마약 같다”고 설명했다. 52억주라는 엄청난 물량, 풍부한 유동성, 장중(場中)에 상·하한가를 넘나드는 주가변동폭 등이 마약의 주성분이다.

애널리스트 A씨는 9일 연속 상한가에 대해 “폭탄 돌리기가 끝날 때만 남았다”고 예언했고 그 예언은 11일 오후 이뤄졌다.

▽처리는 가능할까〓하이닉스라는 괴물이 탄생한 데는 현 정권도 한몫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당시 경제팀은 재무위기에 시달리던 LG전자와 현대전자 두 회사를 억지로 합병시켰다. 이른바 ‘빅딜 정책’이었다. 이후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통합된 현대전자는 하이닉스반도체로 이름을 바꿨다.

빅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사업교환(business swap)을 핵심으로 하는 빅딜은 업종전문화를 통한 중장기 경쟁력 강화방안으로 기업 및 국가의 단기 유동성 확충에 전력해야 하는 당시 상황에 안 맞는 처방이었다는 지적. 어쨌거나 그 후 하이닉스는 지금까지 국가경제의 멱살을 쥐고 흔들고 있다.

홍콩 크레디아그리콜에셋 매지니먼트 펀드매니저 縣온펑은 “하이닉스 이사회가 매각을 부결시켰을 때 깜짝 놀랐다. 주주 직원 채권단 등 당사자들의 이해조정에 실패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임송학 투자전략팀장은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하이닉스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많다”며 “하이닉스는 한국식 구조조정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말했다.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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