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대기업 리더들④]삼성, 학벌보다 실력으로 승부

  • 입력 2002년 2월 27일 18시 12분


삼성에버랜드 현장을 점검하고 있는 허태학 사장.
삼성에버랜드 현장을 점검하고 있는 허태학 사장.
삼성계열사 사장단 45명 가운데 요즘 ‘가장 잘나가는 최고경영자(CEO)’는 누구일까. 그룹 내부에서는 삼성에버랜드 허태학(許泰鶴) 사장을 꼽는 사람이 많다.

허 사장은 28일 열리는 호텔신라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돼 두 회사의 CEO를 겸한다. 삼성에서 두 계열사 대표를 겸임한 사람은 전문경영인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강진구(姜晉求), 이수빈(李洙彬) 전 회장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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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을 챙기기도 힘든 터에 두 ‘알짜 계열사’의 경영을 선뜻 맡긴 것은 그룹 수뇌부가 허 사장의 역량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다. 9년째 에버랜드 대표로 일하고 있는 그는 삼성전기 이형도(李亨道) 부회장이 중국 총괄로 옮김에 따라 ‘현직 최장수 CEO’ 기록도 보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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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사장은 업무와 상관없어 보이는 실업고와 지방대를 졸업했지만 서비스 레저라는 한 우물을 판 끝에 이 부문의 간판 기업인이 됐다.

삼성에는 이처럼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오직 실력으로 승부해 진가를 인정받은 기업인이 많다. 철저하게 실적 위주로 평가하는 성과주의 인사 정책이 자리를 잡으면서 학력의 불리함을 딛고 임원 반열에 오른 ‘고졸 신화’도 여럿 나왔다.

▽비(非)전공 분야에서 우뚝 선 CEO〓삼성화재 이수창(李水彰) 사장의 대학 전공은 수의학. 제일기획 배동만(裵東萬) 사장과 제일모직 원대연(元大淵) 사장은 각각 축산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룹의 정보기술(IT)통으로 꼽히는 삼성SDS 김홍기(金弘基) 사장은 상대 출신이며, 삼성중공업 김징완(金澄完) 사장은 사학과를 졸업했다.

이수창 사장은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서 새벽이 오길 기다린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만큼 일을 좋아하는 스타일. 경북 예천의 대창고를 졸업한 그는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전공을 가리지 않고 학비가 덜 드는 서울대 수의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영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승부근성이 강해 “남과 똑같이 하는 것은 내가 먼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배동만 사장은 보안경비업체인 에스원의 정보화를 주도한 데 이어 제일기획에서 직원들에게 창의력 있는 광고 제작을 독려한다. “나처럼 시골에서 별다른 배경도 없이 올라온 사람이 사장에까지 오른 것은 삼성의 체계적인 교육과 공정한 인사 덕택”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사학도였던 김징완 사장도 거제조선소 등 중장비 생산현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비서실을 거쳐 친정회사의 CEO로 금의환향했다.

상대 출신인 김홍기 사장은 은행원으로 일하던 29세 때 미국 IBM의 영문 매뉴얼을 펴놓고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워 한국의 대표적인 IT 전문경영인의 지위에 올랐다. 제일모직 전산부장 시절 국내 최초로 자재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삼성의 정보화에 큰 공을 세웠다.

▽인재 제일주의로 자수성가형 기업인 키워〓삼성전기 태국법인장인 삼성전기 최종윤(崔鍾允·57) 상무의 최종학력은 동아공고 졸업. 하지만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통솔력을 갖춰 외국 유명대학의 석·박사 학위를 보유한 후배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해 생산과장과 부장을 거친 그는 1992년부터 태국공장에서 근무하면서 공장설비의 효율성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96년 임원으로 승진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崔禹錫) 소장은 석박사들로만 구성된 연구소 연구인력 가운데 유일한 학사. 오랜 언론계 경험과 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경제흐름을 읽는 통찰력 면에서 석박사들을 압도한다는 평을 듣는다.

삼성의 경영진 가운데 이른바 명문가의 자제이거나 오너와의 인척관계에 힘입어 승진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보다는 지방이 고향인 사람이 많고 세칭 ‘명문대’ 출신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삼성의 경영자 선발 과정이 비교적 능력 본위로 이뤄졌음을 나타낸다. 삼성 사장단 중 서울대 졸업자는 전체의 절반에 못 미치는 18명으로 결코 많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올해 초 실시된 임원 인사에서 상무보로 승진한 142명 중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3개 대학 출신은 33명(23.2%). 지방대 졸업자는 32명(22.5%)이고 고교 및 전문대졸 학력으로 ‘샐러리맨의 별’인 임원 대열에 오른 이도 5명이다. 현재 삼성에는 고졸 임원 19명이 재직하고 있다.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신규임원 승진자 58명의 학교별 분포는 경북대가 6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서울대 인하대 성균관대 각각 5명 △연세대 부산대 각각 4명 △고려대 광운대 동국대 서강대 각각 3명이다. 적어도 삼성전자 임원인사에서는 ‘출신대학 평준화’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재계에서는 삼성이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먼저 공채제도를 도입한 것도 ‘자수성가형’ 기업인을 많이 배출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비전공 분야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은 삼성의 최고경영자
회사이름 대학전공현재 위상
삼성에버랜드허태학경상대 농학서비스 레저부문의 간판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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