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聖과 性은 '옷 한겹' 차이?

  • 입력 2002년 2월 21일 14시 35분


…지구 저 끝에서 털레털레 걸어온 한 여인이 시스틴 성당 벽화 앞에 선다. 그녀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반쯤 눈 감은 근육질의 아담을 보고 아랫배에서 열기가 솟구치는 것을 억제하지 못한다. 성욕을 느낀 것이다…

세계적 문호 예이츠의 유작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성(聖)과 속(俗)의 결합이라는 그 지난한 문제를 어느 누가 이렇게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원숙한 시를 생산해냈던 예이츠, 그 대가의 솜씨가 엿보이는 구절이다.

선/악, 천당/지옥, 죄/벌 등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진 서양인들에게 성과 속 역시 좀처럼 화해할 낌새를 보이지 않던 대립항이었다. 신성모독이란 그들에겐 지구상의 단어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가수 마돈나의 출현은 그저 가십거리가 아니라 도발적인 대항문화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란 뜻의 마돈나를 이름으로 가졌지만, 성녀 대신 창녀의 이미지를 전파하면서 성역에 침을 뱉은 것이다.

광고에서도 그런 저항정신이 엿보인다. 네덜란드의 Kro라는 가톨릭 방송국 광고를 보자. 그림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한쪽 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훤한 후광을 받으며 근엄하지만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미지가 지금까지 마리아가 등장하는 성화의 모범답안이었다. 그러나 이 광고의 마리아는 도발적이다. 드러낸 한 쪽 가슴 위로 치켜 뜬 눈, 뭔가를 항의하려는 듯한 입모양…성모 마리아를 이처럼 에로틱하고 독기 서린 모습으로 각색한 이미지는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성(聖)스러움을 벗기기 위해 뻗대는 성(性)스러움의 전복적 상상력이 대담하고 재치있어 보인다.

이제 광고에서도 신성모독의 금기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톨릭 방송국이 스스로의 존재 근거가 되는 종교를 이런 식으로 풍자했다는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 사회적 금기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고 자부하는 네덜란드였기에 가능한 크리에이티브일 수도 있다.

성과 속의 오묘한 결합. 서로 결부될 수 없는 이미지가 하나로 합쳐지기에 그 파장은 크다. 얼음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성과 속은 양극으로 분리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다. 외출할 때 눈만 내놓고 다닐 정도로 경직되게 교리를 따르는 이슬람 여성들의 언더웨어가 너무나 원색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뿐인가. 생명의 잉태라는 가장 성(聖)스러운 사건은 가장 성(性)스러운 이벤트에서 출발한다. 아이러니. 따져 보면 성과 속의 결합은 우리네 하루하루의 일상사였던 셈이다.

김홍탁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광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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