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농업' 7대 쟁점]쌀수매가 인상이냐 인하냐

  • 입력 2001년 11월 21일 18시 36분


《한국의 농업문제는 수십년간 누적돼온 내부 요인에 도하라운드 출범 등 대외적 변수까지 겹쳐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다.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과감한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하지만 어느 정부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았다. 난마와 같이 얽힌 국내 농업문제를 7가지 핵심 쟁점으로 요약해 본다.》

▽쌀 수매가 인상이냐 인하냐〓농림부장관 자문기구인 양곡유통위원회는 16일 사상 처음으로 내년 쌀 수매가를 4∼5% 낮춰야 한다는 건의안을 냈다. 이는 생산원가 상승분 3.6%와 소비자물가 상승률 3%를 포함해 6.6% 인상을 요구한 전국농민회총연맹과는 10%포인트 이상 차이나는 것.

현정부 들어서도 추곡수매가는 매년 4∼7%씩 올랐다. 농민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의 수매가 인상으로 국내 쌀값은 올 7월 기준으로 미국산의 5.8배, 태국산의 9.2배, 중국산의 6.3배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는 가격 지지를 위한 보조금을 금지하고 있어 정부는 매년 수매예산을 750억원씩 줄여가야 한다. WTO와의 마찰을 감수할 생각이 아니라면 농민들이 요구하는 ‘전량수매’나 ‘농협을 통한 정부수매가 수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야가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수매가 인하에 반대하고 있어 실제 수매가가어떻게결정될지는아직 미지수이다.

▽농업 보조금을 통한 소득보전 실익 있나〓올해부터 시행된 논농업 직불제는 쌀값 하락으로 줄어든 농민소득을 ㏊당 20만∼25만원씩 메워주는 보조금 제도다. 정부는 내년 예산에서 직불제 단가를 25만∼35만원으로 올리기로 했으며 최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40만원으로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WTO는 추곡수매와 같은 가격보조금은 금지하고 있으나 직불제와 같은 소득보조금은 허용하고 있다. 농림부 김동근(金東根) 차관은 “미국이나 EU 등 농업선진국들도 각종 보조금제도로 농가소득을 보전해주고 있다”면서 “직불제 단가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논농업 직불제가 생산을 늘려 쌀값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 이 때문에 농사를 쉬거나 다른 작물을 심을 때 보조금을 주는 휴경직불제나 전작(轉作)직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쌀시장 개방 피할 수 있나〓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UR)를 통해 2004년까지 쌀을 최소량만 수입하는 관세유예 품목으로 지정받았다. 농림부는 “2004년 쌀 재협상 때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 쌀 관세 인하폭을 낮추면서 완전 관세화를 피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도하라운드의 출범으로 시장개방 가능성이 크게 커졌다. 특히 UR 협정문은 2004년 쌀 재협상 때 수입국의 시장개방 수준에 수출국이 만족하지 못하면 수출국이 일방적으로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을 늘릴 수 있도록 해 사실상 시장개방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쌀수입정책을 관세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최낙균(崔洛均) 연구위원은 “쌀 관세화를 채택하면 관세화 유예로 최소시장접근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쌀 수입량이 오히려 적어져 자급률을 높일 수 있고 고율관세의 징수액으로 농가소득 손실분을 메워줄 수 있다”고 말한다.

▽식량자급 문제없나〓한국의 전체 곡물자급도는 29%다. 그러나 주곡인 쌀은 100% 자급하고도 남아 재고가 늘고 있다. 현재 수입되는 쌀은 UR 협정문에 따라 2004년까지 국내 소비의 4%까지 늘려가기 위한 수준에 불과하다.

쌀 생산량은 늘어나는데도 쌀값은 수입쌀보다 평균 6배나 비싼 상태가 유지되면서 정부 일각에서는 “세계화가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식량자급률은 의미가 없으며 ‘비교우위’에 따라 싼 농산물을 수입하고 비싼 제품을 파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식량안보’ 논리는 여전히 힘을 유지하고 있다. 도하라운드 출범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식량수입국들은 농업의 비교역적특성(NTC)을 내세웠다.

▽농지 묶어둬야 하나〓쌀이 과잉 생산되자 일부 경제부처에서는 농업진흥지역 등으로 용도가 묶여 있는 땅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대책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현재 한국 논의 70%는 밭이나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없는 규제대상이다. 용도가 자유로워지면 매각이 쉬워 농업을 중단하는 농가가 늘어 생산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농림부측은 “일본도 전체 280만㏊중 100만㏊가량을 놀리고 있지만 논의 형태를 유지해 위급할 때 즉각 쌀생산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촌 구조조정 어떻게 해야 하나〓한국 농업의 대표적 문제는 가구당 경작면적이 작다는 것. 1㏊(3000평) 미만 농가의 비중이 전체 쌀농가의 75.7%를 차지한다.

농림부는 평균 경작면적이 5㏊는 돼야 안정적인 소득을 가질 수 있다고 추산한다. 이에 따라 고령층 농민이 젊은 농가에 농지를 팔고 은퇴할 때 보조금을 주는 경영이양보조금 제도와 농업규모를 키우기 위해 땅을 살 때 장기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농지매매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추곡수매가가 오르면서 농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1997년 273억원이던 경영이양보조금은 작년 117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늘어나는 쌀 재고 대책 있나〓올해 풍작으로 내년 쌀 재고량은 1370만섬이나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나 여야 모두 쌀 재고가 늘어나는 데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나 개발도상국에 원조하자는 논의가 유일한 타개책. 정부는 최근부터 오래 묵은 쌀을 구입가격의 10분의 1 수준에 주정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한국농업의 어제와 오늘
구분1990년2000년
총인구 대비 농가인구(%)15.58.7
총취업인구 대비
농림업취업인구(%)
17.110.5
국민총소득 대비
농림어업소득(%)
8.54.6
도시근로자 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
97.480.5
농가자산(천원)79,352154,226
농가부채(천원)4,73418,535
농가자산 대비 농가부채(%)5.912.0
(자료:통계청 한국은행 등)

연도별 쌀 재배면적 및 재고량
-생산량
(만섬)
전체재고
(만섬)
재배면적
(㏊)
1997년37943451052
1998년35395591059
1999년36555021066
2000년36746791072
2001년(전망)38309891083
2002년(전망)-1370-
재배면적은 회계연도, 재고량은 양곡연도 기준.(자료:농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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