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무기 기업 압박…공정위 권한남용 도마에

  • 입력 2001년 9월 28일 18시 46분


서울 고등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조항을 문제삼아 ‘현행 공정거래법 24조2항(과징금)이 위헌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함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헌재가 서울고법의 이번 제청을 받아들여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그동안 공정위가 부당내부거래 등을 이유로 기업에 매긴 과징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이 봇물처럼 쏟아질 전망이다. 또 그동안 과징금 부과 등 규제조치로 기업들을 압박해왔던 공정위의 위상은 크게 떨어지고 상황에 따라서는 부처의 존폐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마저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고법은 공정거래법에 대한 위헌심사 제청이유로 헌법상 △이중처벌금지 내지 과잉금지 원칙 △무죄추정 원칙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울고법 제6특별부는 위헌제청 결정문에서 “현행 형벌규정으로 충분히 제재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공정위가 과징금을 매길 수 있도록 한 것은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있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하고 해당기업에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되는 데도 행정소송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공정위의 공정력과 집행력을 인정하는 현행 공정거래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나 위헌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경제검찰’을 자처하면서 행정력으로 기업들을 다룬 관행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법원측은 공정위가 과징금 기준을 지원한 기업의 매출액을 근거로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적절하지 못하고 위헌소지가 있다고 판정했다. 특히 과징금이 형벌의 일종인 벌금과 실질적 차이가 없는데도 공정위가 행정처분으로 이를 매기는 것은 사법권 침해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공정위가 과징금 제도를 남용해 ‘입맛대로’ 기업에 대한 규제의 칼날을 휘둘렀다는 불만이 많았다. 특히 현정부 출범 후 공정위 과징금 부과가 국세청의 세금추징과 함께 기업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원성이 잦아졌다.

서울고법의 이번 판정은 기업들의 이런 불만을 받아들여 ‘공룡 경제검찰’로 변신한 공정위를 견제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특히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 등의 권한을 이용해 필요 이상으로 기업들을 규제하려는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공정위는 “서울고법의 이번 위헌제청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반박하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영해기자>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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