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국정진단 초심과 현실4]실패한 빅딜 현주소

  • 입력 2001년 8월 29일 18시 40분


LG그룹 구본무(具本茂) 회장은 1998년 말 일본을 자주 찾았다. 사업상 출장은 아니었다. “심혈을 기울여 육성해온 반도체 부문을 타의에 의해 내놓아야 하는 마음 고생에 따른 피신”이라는 게 한 측근인사의 얘기였다.

당시 LG측은 업무중개를 한 외국계 금융기관에 빅딜이 이뤄지지 않게만 해주면 ‘성공 보수(報酬)’의 2배를 주겠다고 했다. LG측은 계속 버티다가 채권은행단을 통한 금융제재 압력도 받았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강유식(姜庾植) LG구조조정본부 사장은 1999년 1월 6일 기자회견을 갖고 반도체사업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그날 오후 구 회장이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무거운 표정으로 나온 직후의 일이었다. 당시 정부와 LG측은 “그룹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DJ 정부 출범 후 ‘주력업종 중심의 구조 개편’이란 명분 아래 ‘민간 자율’로 이뤄졌다는 5대 그룹간 업종 교환의 ‘막후’ 모습들이다.

LG의 반도체 부문을 인수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는 삼성전자에 이은 세계 2위의 반도체회사(자산규모 20조1000억원)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그리고 2년8개월이 지난 지금, 현 정부가 빅딜의 최대 성과물로 자랑하던 하이닉스는 11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짊어진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이렇게 하기도, 저렇게 하기도 어려운’ 한국경제의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한국 수출의 주력제품인 반도체 생산업체는 자칫하면 하나(삼성전자)만 남을지도 모른다. 현대측에 반도체를 넘겼던 LG측은 아직 매각대금도 다 받지 못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 빅딜의 ‘현주소’도 참담하다. 철도차량과 항공 분야의 통합법인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삼성과 현대의 석유화학부문 통합작업은 무산됐다. 삼성차를 인수키로 한 대우차는 법정관리 신청을 한 뒤 해외매각에 목을 매단 형편이고 삼성차는 프랑스 르노에 넘어갔다. 자율 빅딜의 모범사례로 꼽혔던 여천NCC도 한화와 대림의 마찰로 공동경영 2년도 채 안 돼 진통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빅딜은 목표와 추진방식, 결과면에서 모두 낙제점을 면키 어려운 전형적인 ‘정책 실패’로 꼽힌다. 고려대 이만우(李萬雨·경제학) 교수는 “빅딜은 현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표적 경제정책”이라며 “정부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반강제적으로 개입한 데다 빅딜 후 해당기업들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져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권순활·박원재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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