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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3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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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도권이라고 아파트 짓는 데 별 게 있습니까. 잘 지으면 되지”
그는 자신감이 있다. 이 회사가 광주 전남지역 최대 주택건설업체이고 금융 제조업까지 거느린 때문만은 아니다. 좀 별난 허회장의 이력에서 자신감의 근거가 엿보인다.
현직 부장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치감치 ‘고관 대작’의 꿈을 접었다. 그는 “말도 잘 못하고 공부도 시원치 않아 중학교 때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며 소탈함을 내비쳤다.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4년간 무려 5개 직장을 옮겨다녔다. 설비 하청업체에서 감리업체 설계사무실 대기업은 물론 공무원 생활까지 했다. 다양한 경험이 사업 밑천이 된 셈이다.
허회장은 망하는 회사를 보고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81년 대주종합건설을 설립할 당시는 지역 건설업체가 줄줄이 부도를 낼 때. 고객을 무시하고, 무조건 이익을 남기려하고, 자금 흐름을 무시하고, 덩치만 불리고. 그가 깨달은 ‘기업이 망하는 방법들’이다.
그는 95년 국내 경제여건이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재무구조를 튼튼히 할 필요를 절감했다. 바로 광주 지역 민방을 팔고 ‘클럽 900’ 골프장도 처분했다. 이 때 쌓은 자금력은 외환위기 때 빛을 발했다.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한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허회장은 좋은 상품을 싸게 공급하는 방법으로 원가절감을 꼽는다. ‘원가절감은 직원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 허회장은 “쓸데 없는 지출을 줄이면 월급을 많이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95년 한 해 동안 월급을 4차례나 올리기도 했다. 경쟁업체보다 월급을 ‘무조건’ 많이 준다는 원칙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 직원들이 반납한 급여를 이 듬해 모두 돌려주었다. 덤으로 전 직원의 급여를 한꺼번에 15%나 올렸다. 든든한 직원들은 주택사업의 기반이다.
그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아무 생각 없습니다. 그저 연간 2000∼2500가구 아파트를 꾸준히 공급하면 되지요”라고 말했다.“아파트 잘 짓고, 직원 먹여살리고, 튼튼한 회사 유지하는 정도면 족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