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비즈로 체질 바꿨다...재고율 제로화-생산성 급신장

  • 입력 2000년 10월 12일 18시 30분


길가에서 흔히 보는 피자집이나 분식집 주인에게 “재고를 어느 정도 확보하느냐”고 물어보면 “보통 3일에서 1주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연간 매출이 250억달러며 종업원이 3만5000명이나 되는 미국 최대의 컴퓨터 제조업체가 재고물량이 2시간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미국의 델(Dell) 컴퓨터가 이처럼 믿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델의 본사는 텍사스주 오스틴시 교외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 여름이면 찌는듯한 더위로 에어컨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고 주위에는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한 곳.

델컴퓨터의 오스틴 공장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두 번 놀란다고 한다. 부품이나 완제품을 모아놓는 창고가 없다는 점이 첫째. 재고라고는 조립라인 앞에 쌓아놓은 부품이 전부다.

두번째는 첨단공장이라고 해서 로봇 등 최고 기술로 제품을 만들 줄 알았는데 구로공단 수준의 조립공장이라는 것.

델의 홍보담당자 브라이언트 힐은 “델의 경쟁력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회사와 부품업체, 회사와 고객간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인터넷으로 처리함으로써 유통혁명에 성공한 데 있다”고 말했다.

또 고객 한 명, 한 명의 주문에 따라 컴퓨터를 조립하다 보니 현재의 기술로는 자동화가 불가능하다.

델은 7월부터 회사와 수십여개의 부품회사간 업무를 100% 인터넷으로 처리하고 있다. 고객이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납품업체도 바로 알 수 있도록 정보시스템을 구축했다.

델과 납품회사들은 한 몸처럼 움직인다. 납품업체들은 인터넷을 통해 고객으로부터 델에 주문이 얼마나 들어왔고 현재 공장에서 쓰는 부품이 몇시쯤 바닥이 날 것인지 알고있다. 조립라인에 부품이 떨어지기 2시간전에 항상 부품을 갖다놓는다. 재고비용이 0에 가까운 것. 컴퓨터는 주문한 지 15시간이내에 완성된다.

또 컴퓨터를 주문한 고객은 내가 주문한 컴퓨터가 현재 어떤 공정에 있고 완성된 후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흔히 굴뚝산업(Brick & Motar)이라고 일컫는 대기업의 e비즈니스 변신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다. 부품구매→제조→판매→서비스의 모든 과정을 인터넷과 연결시키면서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종이 자동차 산업.

포드 GM 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의 본사와 각종 공장이 밀집해 있는 디트로이트시. 현재 이 곳의 최대 화제는 ‘코비센트(COVISENT)’다.

수십년을 싸워온 자동차 3인방이 서로 손을 잡고 지난달에 인터넷 부품구매시장인 ‘코비센트(협력 비전 통합 인터넷의 합성어)’를 설립했다. 포드자동차 투자사업부 피터 올슨은 “코비센트는 자동차 3사가 중간 및 최종부품 공급자들의 물량 약 7500억달러를 인터넷상에서 구매하기 위해 만든 세계 최대의 B2B회사”라고 소개했다.

이를 통해 절감되는 돈은 매출액의 6%로 기대된다. 자동차 회사의 이익이 매출액의 2∼3%임을 감안하면 부품을 인터넷시장에서 구매하는 자체만으로 회사이익이 2,3배 증가한다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코비센트가 활성화됐을 때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동차산업의 인터넷과의 결합은 부품조달에만 그치지 않는다.

GM자동차는 최근 ‘온스타’ 서비스를 도입했다. 디트로이트 온스타콜센터에서 만난 서비스 매니저 래리 닐슨은 “자동차에 달린 기기를 통해 자동차의 위치, 호텔 식당 안내 및 예약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며 “곧 자동차와 인터넷이 결합되면 증권거래 뉴스검색 등을 차안에서 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포드 자동차 역시 ‘웹카(web―car)’라는 개념을 도입, 자동차에 텔리매틱 시스템을 장착한 인터넷 자동차를 개발중이다.

인터넷과는 도저히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에너지 회사도 e비즈니스 회사로 변신,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 휴스턴에 본사가 있는 엔론사는 가스나 전기를 파는 평범한 에너지 회사에서 가스 전기 심지어 통신용량까지 인터넷을 활용해서 사고 파는 종합상사로 변신했다. 엔론은 인터넷으로 아마존의 일년 매출액의 10배에 해당하는 10억달러를 하루에 거래시키고 있다.

가스나 전기를 인터넷상에서 사고 팔 수 있다는 신개념을 도입한 엔론에 시장은 엄청난 ‘선물’을 안겨주었다.

엔론의 이익은 89년 2억2600만달러에서 10년만에 9억5700만달러로 상승했다. 닷컴기업의 주가폭락에도 불구하고 엔론의 주가는 98년 26달러에서 63달러로 3배나 올랐다.

인터넷의 도움으로 회사의 특정부서를 인건비가 싼 국가로 옮기는 대기업도 많다. 사무실이 수천㎞ 밖에 떨어져 있어도 한 건물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기 때문.

GE캐피털의 콜센터와 스위스항공의 경리부서는 인도에, 델컴퓨터의 홍콩사무소 고객콜센터는 말레이시아 페낭에 있다.

IBM은 인터넷을 이용, 24시 작업시스템을 도입했다. 중국 베이징 칭화대학 연구원들은 IBM이 주문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하루 일과가 끝날 때면 작업중인 소프트웨어를 미국 시애틀 IBM사무소로 보낸다. 시애틀 사무소 직원들은 중국에서 보낸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일을 한 후 이를 다시 8404㎞ 떨어진 옛소련 땅 벨로루시의 컴퓨터 과학연구소와 라트비아의 소프트웨어 하우스로 보낸다. 이들은 또 일을 한 다음 인도의 타타그룹으로 보내고 타타그룹은 또 소프트웨어를 다듬은 뒤 칭화대학 연구원들이 출근할 무렵인 오전 8시 소프트웨어를 전송한다. 각 지역의 사람들은 하루에 몇시간씩 일을 하지만 프로젝트 자체는 쉴 사이 없이 진행된다.

인터넷은 또 기업이 고객정보를 자세하게 분석하고 전 세계의 사업장이 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리츠칼튼 호텔은 한 고객이 딱딱한 베개를 주문했다면 이후 이 손님이 전 세계 어느 리츠칼튼호텔에서 묵더라도 미리 딱딱한 베개를 갖다놓는다. 처음 보는 고객도 단골처럼 접대할 수 있게 된 것. 미국 대기업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으로 나누는 종래의 구분을 거부한다. 오직 인터넷을 활용할 줄 아는 기업과 인터넷을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시각이다.

<디트로이트·휴스턴·오스틴〓이병기기자·김보원 KAIST테크노경영대학원교수>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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