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회장 사재출연]'건설' 살리고 '상선' 지키기

  • 입력 2000년 8월 25일 18시 47분


현대측은 정몽헌(鄭夢憲)회장의 사재출연에 대해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총력전을 펴겠다는 강력한 의지표명’으로 설명한다.

정주영(鄭周永)전 현대명예회장이 자동차 주식을 판 돈 200억원으로 현대건설의 기업어음(CP)을 매입한 것과 더불어 ‘정씨 일가’가 현대건설을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는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것.

현대가 정회장의 사재출연과 더불어 13일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 외에 추가대책을 내놓기로 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대건설이 이라크 공사대금 미회수 등에 따른 자금난으로 오너일가의 사재를 출연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한편 현대건설 자구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가 건설에서 상선으로 바뀌게 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는 5월말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건설과 중공업의 주식 대부분을 처분, 현대자동차 주식을 사들임으로써 정몽헌회장이 현대건설의 개인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또 건설이 상선을 지배하고 상선이 증권 전자 중공업 상사 등을 지배함으로써 정몽헌회장은 건설을 통해 현대그룹 전체를 장악했다. 그런데 현대건설이 보유한 상선주식을 정몽헌회장에게 매각함으로써 건설은 그룹의 지주회사로서의 성격을 잃게 됐다. 현대건설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기업을 일구기 시작한 이래 53년간 지켜온 지주회사의 역할을 상선으로 본의 아니게 넘기게 된 것.

결국 현대건설은 지분구조로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의 연결이 끊어지게 됐다. 그러나 건설의 최대주주는 여전히 정몽헌회장(7.82%)이기 때문에 건설이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지는 않는다.

현대측은 이런 지분구도 변화에 대해 “중공업 주식은 매입하려는 기관이 많아 교환사채 발행에 문제가 없지만 상선주식은 현재 액면가 이하여서 교환사채 발행이 어려워 정회장이 직접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외환은행측도 “교환사채발행은 부채계정에 올라가기 때문에 정회장이 직접 매입하는 것이 낫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금융시장에서는 이와 관련, 정회장의 상선주식 매입을 ‘건설의 유동성 위기해소’와 ‘경영권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정회장이 갖고 있는 상선 지분이 4.9%에 불과한데 비우호적인 세력이 상선주식 23.86%를 매입할 경우 현대상선의 경영권이 위협을 받는 것은 물론 상선이 지배하는 전자 증권 중공업의 경영권 방어도 어렵다는 것.

재계 일부에서는 정회장이 상선을 지주회사로 삼고 경영권 복귀를 노리고 있다는 설도 흘러나온다. 또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현대측이 현대건설과 다른 계열사의 고리를 끊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럴 경우 쏟아질 비난을 막기 위해 고육책으로 사재출연을 감수했다는 것.

현대측은 이런 시각에 대해 “현대측이 현대건설을 포기한다면 왜 정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고 정 전 명예회장이 현대건설의 기업어음 2000억원어치를 매입하겠느냐”며 “현대는 지금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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