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채권단案'수용 배경]정부-시장 압박 '사면초가'

  • 입력 2000년 8월 3일 20시 15분


정부와 시장을 상대로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여 오던 현대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요구해 온 △현대자동차 조기 계열분리 △실효성있는 자구 계획 △‘인적 청산’ 등 3개항을 ‘최대한 충족하는 경영개선계획’을 내놓겠다고 밝힘으로써 우리 경제의 큰 골칫거리였던 현대문제가 벼랑끝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현대가 두 손을 완전히 들고 나온 것은 더 이상 버티다가는 자칫 그룹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대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내외 투자가들 사이에서 현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 확산되면서 현대라는 이름만으로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정부의 기류가 최근 갈수록 초강경쪽으로 급선회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현대 처리 문제에 대해 강경과 온건 기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청와대는 최근 ‘현대가 더 이상 질질 끌 경우 원칙적으로 처리하라’는 지침을 금융 당국에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빠르면 7일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개각에서 경제팀 컬러가 현대문제에 관한 한 현재보다 더 강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현대는 급속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 관계자들은 이미 지난달 31일부터 “현대가 완전히 손을 들었다고 써 달라”고 기자들에게 부탁해 왔다.

물론 아직 현대문제가 완전히 타결됐다고 속단할 수 없는 측면은 있다.

현대차 계열 분리문제와 관련, 가장 유력한 안으로 떠오른 정주영(鄭周永)전명예회장의 현대차지분 처리 방안(보유 지분 9.1%중 6.1%를 의결권 포기 각서와 함께 채권단에 위임)도 ‘왕회장’의 최종 재가를 받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정전명예회장의 건강이 크게 악화돼 ‘왕회장’이 더 이상의 변수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더 큰 걸림돌은 ‘인적 청산’ 문제, 특히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 등 이른바 ‘가신그룹’ 정리 문제와 현대 구조조정본부측과 ‘앙숙’인 정몽구(鄭夢九)현대차회장의 퇴진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현대 내부에서 이회장의 영향력은 최근 절정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정몽헌(鄭夢憲)회장조차 함부로 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회장 등에 대한 정부의 극도로 차가운 시각을 감안할 때 결국은 ‘가신그룹’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정몽구회장 문제는 정회장과 현대차측의 반발 강도나 비교적 자금 사정이 괜찮은 점을 감안할 때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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