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임원들 "뭣하러 올라왔나"…연공서열파괴 예사

  • 입력 1999년 12월 14일 19시 39분


최근 이사로 승진하면서 임원 대열에 올라선 D그룹 J이사.

내년 업무 계획을 세우고 있는 J이사는 “해마다 하던 일인데도 왠지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임원급은 업무 실적에 따라 성과급에 큰 차이가 나므로 목표 설정부터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깨를 짓누른다는 것.

모 그룹 임원들은 요즘 때아닌 영어 공부에 한창이다. 자체 개발한 영어평가 시험에서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승진 자격조차 주지 않기 때문.

‘기업의 꽃’으로 불리던 임원들이 갈수록 허리가 휘고 있다. 기업들이 선진국형 임원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임원들의 무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 더욱이 최근 기업들이 채택하는 새 시스템은 임원들의 실적에 따라 연봉과 성과급에서 큰 차등을 두고 있어 임원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공과(功過)는 ‘돈’으로 직결〓한화는 내년부터 임원들을 대상으로 ‘성과급 펀드’를 운영한다. 임원들의 연봉을 13으로 나눠 13분의 12는 매달 급여로 지급하고 나머지 13분의 1은 모아 적립한 뒤 연말에 성과에 따라 보너스로 ‘되찾아가는’ 시스템.

두산은 내년부터 실적이 좋지 않은 임원에게는 아예 성과급을 한푼도 주지 않기로 했다. 대신 월등한 실적을 올린 임원에게는 최하 수준의 임원에 비해 1800%나 많은 성과급을 지급한다.

▽갈수록 자리는 줄어들고〓대기업의 임원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700여 상장사의 임원수는 지난해보다 평균 0.9명 가량 줄었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는 임원도 갈수록 늘어 올 상반기에만 평균 3.34명이 ‘퇴출’을 당했다. 사외이사제 강화로 자리는 더욱 줄어들 전망.

기업들은 최근 임원 직제를 사장 부사장 상무 등 3단계로 줄이는 추세여서 승진 기회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연공서열을 파괴하는 발탁 인사가 늘고 있는 것도 기존 임원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최근 승진 인사를 단행한 J그룹의 경우 몇몇 상무가 한꺼번에 몇 년 선배인 전무들과 함께 부사장으로 수직상승해 눈길을 끌었다. 컨설팅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기업들이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지배구조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라며 “과거처럼 오너 이익만 염두에 두다가는 경쟁에서 밀리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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