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연구소들 "성장률 전망 너무 틀려 할 말없다"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8시 51분


‘전망이란 본래 틀릴 수밖에 없는 것.’

최고의 두뇌집단임을 자부하는 경제연구소 종사자들. 이들은 경제전망이 틀릴 때 흔히 이렇게 말한다. 수천만명이 실타래처럼 얽힌 경제현상을 ‘족집게’처럼 맞히는 것은 ‘예언’이지 ‘전망’이 아니라고 방어하는 경우도 심심찮다.

그러나 이같은 변명도 전망치와 실제가 어느 정도 비슷해야 통하게 마련. 지난해 말 국내 연구기관들이 발표한 ‘99년 경제전망’과 최근 발표된 ‘99 추정치’를 비교해보면 ‘전망 대상이달랐나…’라는 의심이 갈 정도로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A연구원에서 동향분석만 7년째 해온 P씨는 올해 4차례나 성장률 전망을 수정했다. 그것도 수치를 약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전망치를 통째로 갈아치우는 ‘대수술’이었다. 산업생산이나 건설경기 지표 등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들이 하루가 다르게 살아나는 것이 감지됐기 때문.

이 연구원의 K이사는 “실무자들의 감(感)을 토대로 실제 수정하기까지 1개월 정도의 시차가 있었다”면서 “올해는 동향분석팀에는 최악의 해였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최고의 싱크탱크를 자부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지난해말 전망한 올해 성장률은 2.2%지만 최근 9.0%로 상향조정한 추정치를 내놓았다. 편차는 무려 6.8%포인트. 한국산업연구원(KIET)의 전망도 6%포인트의 격차가 났다. 이 정도 편차는 실업인구 추정에서도 100만명 안팎의 오차를 만들어냈다.

민간연구기관도 사정은 마찬가지. 삼성경제연구소의 8%포인트를 비롯, 현대 LG연구원 등이 모두 7,8% 포인트 안팎의 수정 격차를 보였다.

편차가 크다보니 수개월 전 스스로 발표한 전망을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금주말 올해 최종 수정전망이 나올 것”이라며 “9월 전망자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잘라말했다.

올 1월 연구소중 가장 높은 전망치(3.2%)를 내놓으며 ‘경기과열 위험이 있다’고 재경부와 신경전을 벌였던 한국은행은 “연초 전망은 내부자료가 유출된 것”이라며 “공식 전망자료를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연구소들이 쏟아내는 전망은 정부와 재계가 각종 정책 및 전략을 수립할 때 반드시 참고하는 ‘방향타’이다. 이처럼 중요한 경제전망이 1년 사이 ‘널뛰듯’ 치솟은 이유는 뭘까.

B연구원 임원은 “경제가 이렇게 빨리 안정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환율 전망만 비슷하게 맞혔을 뿐 대내외 경제환경이 ‘순식간에’ 호전됐다는 것.

엔화가치 상승 등으로 수출이 크게 늘고 정부의 저금리 유도책이 맞아떨어지면서 산업활동이 크게 증가했다는 설명. C연구원 관계자는 “증시까지 폭발해 소비도 더욱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D연구원 이사는 “IMF이후 소진된 재고를 다시 쌓는 과정을 간과하는 바람에 성장률 전망이 저평가됐다”며 “연구소들이 우왕좌왕한 것은 사실이지만 IMF사태도 사상초유의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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