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정책연구소인 한국경제연구원은 11일 ‘대기업 환경변화와 기업 대응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재무구조 △사업구조 △기업지배구조 등 3개 구조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재벌들이 상황인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보고서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 관행이 사라진 지금 정부압력보다 무서운 것은 시장제재”라며 “‘명령에 의한’ 개혁에서 ‘능동형’개혁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김우중(金宇中)전경련회장에게 제출됐으며 8월중 회장단회의에서 정식 보고될 예정이다.
▽‘실패한 경영자는 퇴출해야’〓한경연이 정부의 정책과제나 건의사항을 담지 않은 보고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보고서는 일부 재벌들이 보여준 안이한 상황인식과 선단식 경영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해 재계에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부채비율 200% 달성과 결합재무제표, 다각화(문어발식) 경영에 대한 ‘전향적’ 결론.
한경연은 그동안 △‘부채비율 200%’ 목표는 업종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경직적 가이드라인이며 △결합재무제표는 국제기준에 맞지 않고 △다각화 경영은 이점도 많다고 주장해 왔으나 이번엔 “‘주어진’ 상황으로 인정하자”고 후퇴했다.
보고서는 또 ‘실패한 경영인 퇴출’ 같은 민감한 주장도 포함하고 있다. 이재우(李栽雨)연구위원은 그러나 “경영실패는 채권단의 평가에 따르는 것”이라며 특정그룹 총수의 거취와 무리하게 연결지을 수 없다는 입장.
▽재벌들의 ‘항복선언’?〓좌승희(左承喜) 한경연원장은 보고서 내용이 미칠 파장을 우려한 듯 “정부 제재보다 무서운 ‘시장제재’의 시대를 맞아 선단식 경영의 비용이 높아지고 있어 재벌체제는 중요한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제재 수단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온 게 다름 아닌 정부라는 점에서 정부개혁에 대한 ‘항복선언’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재계는 인위적인 5대그룹 빅딜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경제구조 개혁이 재벌에 집중되지 않을까 우려해왔다. 특히 한진 계열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시작으로 △삼성가(家)에 대한 우회 증여혐의 조사 △현대그룹 주가조작 조사 등 일련의 사건을 “정부가 총수의 경영지배권에 화살을 겨눈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전경련 및 한경연은 이러한 피동적인 개혁자세가 가져올 ‘파국’을 우려해 스스로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는 분석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