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經硏 재벌 정면비판「재계 충격」…보고서 발표

  • 입력 1999년 7월 12일 07시 41분


재벌의 이해를 대변해온 한국경제연구원이 재벌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 재계에 충격을 주었다. 달라진 경영환경을 감안한 ‘컨설팅 보고서’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하면서 정부의 개혁공세를 버텨온 일부 재벌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정책연구소인 한국경제연구원은 11일 ‘대기업 환경변화와 기업 대응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재무구조 △사업구조 △기업지배구조 등 3개 구조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재벌들이 상황인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보고서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 관행이 사라진 지금 정부압력보다 무서운 것은 시장제재”라며 “‘명령에 의한’ 개혁에서 ‘능동형’개혁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김우중(金宇中)전경련회장에게 제출됐으며 8월중 회장단회의에서 정식 보고될 예정이다.

▽‘실패한 경영자는 퇴출해야’〓한경연이 정부의 정책과제나 건의사항을 담지 않은 보고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보고서는 일부 재벌들이 보여준 안이한 상황인식과 선단식 경영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해 재계에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부채비율 200% 달성과 결합재무제표, 다각화(문어발식) 경영에 대한 ‘전향적’ 결론.

한경연은 그동안 △‘부채비율 200%’ 목표는 업종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경직적 가이드라인이며 △결합재무제표는 국제기준에 맞지 않고 △다각화 경영은 이점도 많다고 주장해 왔으나 이번엔 “‘주어진’ 상황으로 인정하자”고 후퇴했다.

보고서는 또 ‘실패한 경영인 퇴출’ 같은 민감한 주장도 포함하고 있다. 이재우(李栽雨)연구위원은 그러나 “경영실패는 채권단의 평가에 따르는 것”이라며 특정그룹 총수의 거취와 무리하게 연결지을 수 없다는 입장.

▽재벌들의 ‘항복선언’?〓좌승희(左承喜) 한경연원장은 보고서 내용이 미칠 파장을 우려한 듯 “정부 제재보다 무서운 ‘시장제재’의 시대를 맞아 선단식 경영의 비용이 높아지고 있어 재벌체제는 중요한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제재 수단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온 게 다름 아닌 정부라는 점에서 정부개혁에 대한 ‘항복선언’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재계는 인위적인 5대그룹 빅딜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경제구조 개혁이 재벌에 집중되지 않을까 우려해왔다. 특히 한진 계열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시작으로 △삼성가(家)에 대한 우회 증여혐의 조사 △현대그룹 주가조작 조사 등 일련의 사건을 “정부가 총수의 경영지배권에 화살을 겨눈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전경련 및 한경연은 이러한 피동적인 개혁자세가 가져올 ‘파국’을 우려해 스스로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는 분석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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