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사장 퇴진]私기업 경영권 침해 악선례

  • 입력 1999년 4월 22일 07시 19분


빈발하는 인명사고와 통치권자의 실명(實名)경고, 그리고 대한항공 조양호(趙亮鎬)사장의 사임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은 향후 현 정부의 재벌개혁 작업의 즉흥성과 ‘수단의 부적절성’을 보여주는 악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한항공이 인명을 다루는 항공서비스업체이긴 하지만 최고 통치권자의 질책과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 못이겨 최고경영자가 사임한 절차상의 ‘무리’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조중훈(趙重勳)회장 일가가 정부 인사들의 강성발언에 놀라 구수회의를 열어 경영권을 반납하는 형식은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사기업 경영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로 비쳐지기 십상”이라고 말한다. A그룹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조사장을 퇴임시키는 과정에서 대한항공의 사외(社外)이사는 무슨 목소리를 냈는지 궁금하다”고 우회적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주한(駐韓)외국기업인들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시장주의에 역행하는 행동을 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평했다.

물론 91년 페놀유출 사건으로 두산 박용곤 당시 회장이 물러나고 일본에서도 전일본항공 사장이 인명사고 직후 사임하는 등 경영진의 실책에 대해선 가혹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페놀사건 때도 경영진에 대한 통치권자의 공개경고는 없었으며 경영진 퇴진은 소비자인 국민의 들끓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기업의 자율적 결정이었다.

대한항공의 한 간부직원은 “대통령이 직접 회사이름을 거론하는 바람에 애꿎은 직원들만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며 “정부가 지나치게 ‘충격요법’에 의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