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사장 퇴진]재계 반응…간섭에 불만 토로

  • 입력 1999년 4월 22일 07시 19분


대한항공 오너 경영진의 퇴진에 대해 재계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사안이 민감해서인지 혹은 정부의 눈치를 의식해선지 그룹마다 공식적인 코멘트를 꺼렸으나 반응은 두갈래로 엇갈렸다.

“정부가 사기업 경영권에 왜 간섭하느냐”며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방만하게 회사를 운영한 조중훈(趙重勳)회장이 자초한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부 그룹들은 정부의 구조조정 고삐가 더욱 당겨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A그룹 관계자는 “정부가 너무 한 것 아니냐”며 강한 톤으로 정부의 ‘과잉개입’을 비판했다. “조회장이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꼭 그게 오너 경영체제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반응과 “현정부가 군사정권 식의 발상을 하고 있다”고 까지 말하는 이도 있었다.

B그룹 임원은 “그렇다면 오너가 없는 국영기업은 합리적이라는 논리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가 오너체제는 경영을 잘못하고 전문경영인은 잘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면 그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기아자동차의 예를 들어 “기아차에서도 주인 없는 전문경영체제는 결국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에선 ‘항공산업의 공기업적 성격’을 들어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C그룹 관계자는 “정부의 간섭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대한항공의 잇단 경영실책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야 했다”면서 “일본에서도 잦은 사고에 책임을 지고 오너가 물러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전경련측은 일절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한 임원은 “청와대 발언에 대해서는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면서 “곤혹스럽다”고만 말했다.

다른 그룹으로 사태가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선을 그었다. 2세승계 작업 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항공의 특수성에서 빚어진 일을 다른 그룹으로 확대해석해선 안된다”는 반응들.

한편 정부로부터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그룹들은 더욱 긴장한 표정이다. 이번 일로 정부가 재벌에 ‘독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게 확인된 만큼 “정부의 기업공세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보였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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