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1년/공과진단 과제점검]박승/경제

  • 입력 1999년 2월 19일 19시 33분


《25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지 1년. 새정부 1년의 성적은 몇점일까.

동아일보는 새정부 1년의 공과를 진단하고 남은 4년의 과제를 제시하는 정담(鼎談)을 마련했다. 참석자는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동아일보논설고문 박승(朴昇)중앙대교수 최원식(崔元植)인하대교수. 이들은 정담내용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3개분야로 나눠 직접 집필했다. 정담은 17일 오전 동아일보사 8층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난(國難)은 급격한 생존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데 기인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저임금과 보호주의 틀 속에서 빚으로 공장을 세워 절대빈곤을 치유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저임금은 고임금으로, 그리고 보호주의는 개방체제로 세상이 갑자기 달라지면서 그동안 잘 나가던 우리경제의 성장엔진은 서버리게 된 것이다. 그것이 97년말의 환란(換亂)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김대중정부가 한 일은 당장 불을 끄는 소방수의 역할이었다. 그러한 진화(鎭火)작업을 김대중정부는 대체로 잘 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환란 당시 88억달러에 불과했던 가용외환보유고가 1년뒤에 4백90억달러가 되고 우리나라의 대외신용이 투자적격으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우리경제가 21세기에 달려가야 할 목적지는 소득은 높고 물가는 싸고 삶의 질은 높은 이른바 ‘고소득 저물가 고생활국’이다. 그러한 생활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의 발전엔진을 새 것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엔진은 고임금과 개방체제라는 새 환경속에서 잘 달리면서 국민생활의 선진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러한 엔진이다.

김대중정부가 앞으로 남은 4년동안 해야 할 일은 21세기를 달리게 될 우리경제의 새로운 발전엔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개혁이나 구조조정은 그러한 방향에서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우리경제의 당면문제가 엔진의 부품교체가 아니라 전면대체인 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면개혁이며 전방위의 구조조정이다.

이러한 개혁은 1∼2년에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9년이 소요되었다. 우리의 경우 새 엔진으로 구조조정을 마치는데는 적어도 향후 4∼5년이 걸릴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은 4년의 임기는 딴 생각 하지 말고 몽땅 구조조정에 바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렇게 하기 위해 향후 김대중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 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완결하는 일이다. 구조조정은 우리경제가 새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자구노력이며 이것은 이제 초입단계에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와 산업의 구석구석은 인력배치 조직 의식구조 등이 모두 저임금과 보호주의 시대의 틀로 짜여져 있다.

둘째로 경제효율과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개혁의 틀을 짜는 일이다. 정치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개혁의 발목을 잡고 개헌논쟁 등으로 온나라가 휩쓸린다면 경제회생은 어렵게 될 것이다. 정치와 정부부문의 개혁을 더욱 과감하게 다그쳐야 한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앞으로는 4∼5%의 실업은 늘 끌어 안고 살아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제도 정비도 있어야 한다. 금융소득의 종합과세를 유보시킨 것은 반개혁적인 실책이었다. 반드시 임기중 부활시켜야 할 것이다.

셋째로 경제정책의 운용에 있어서는 성장보다도 국제수지 쪽에 초첨을 맞추고 내핍체제의 기조를 견지해야 한다. 지금 우리경제가 환란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흔들리고 있는 중국이나 홍콩이 무너지고 일본 엔화가치가 계속 떨어진다면 어쩔 것인가. 여기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향후 4∼5%의 성장에 만족해야 할 것이며 특히 올해의 경우 성장이 2%수준을 초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허리띠를 풀면 안된다. 성장을 높이려고 내수부양책을 써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강력한 리더십과 시장 경제와의 조화문제다. 김대통령의 카리스마와 강력한 리더십이 국난극복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시장경제원리와 상충할 우려가 있다. 이른바 ‘빅딜’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내수시장을 갈라먹는 발전설비 전동차 항공 전자와 자동차 등의 빅딜을 욕을 먹고라도 성사시킨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으나 반도체의 경우는 그것이 거의 전량 수출상품일 뿐만 아니라 사업체의 상호교환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방법에 있어서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현재의 경제난은 지나고 보면 재도약의 호기(好機)로 평가될 것이다. 어차피 겪어야 할 적응기간을 적어도 수년이상 단축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임기와 인기에서 초연해야 한다. 국민에게 생색을 내려고 하지 말고 더 땀 흘리고 허리띠 졸라매도록 요구하고 정부 스스로 이것을 실천해야 한다. 역사의 앞만 보고 일해 주길 바란다.

▼정담 집필자

박승(朴昇)

△중앙대대학원장

△청와대경제수석

△건설부장관

△중앙대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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