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부산그린벨트(上)]도시51%가 개발제한 묶여

  • 입력 1998년 10월 10일 19시 10분


《정부가 도시녹지 확보를 위해 지난 27년 동안 시행해온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제도는 주민들의 생활에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자 정부는 전국토의 5.4%를 차지하는 그린벨트에 대한 실태조사를 끝내고 이달 중 조정안을 마련, 공청회를 거쳐 연말까지 개선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특히 부산의 경우 51%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공유수면 등을 제외하면 도시가용 면적은 23%에 불과해 그동안 많은 민원이 누적돼 왔다. 주민 전문가 환경단체 등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현지 그린벨트의 현황과 문제점 및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명해본다.》

부산 도심에서 서쪽방향, 남해로 뻗어내린 낙동강을 건너 김해국제공항으로 가다보면 ‘강 양쪽 풍경이 어쩌면 이렇게 대조적일까’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낙동강 서편 강서구 지역의 가장 높은 빌딩은 4층짜리 구청이다. 구청 옥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2층 이상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온통 비닐하우스와 논 밭만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흡사 70년대의 농촌풍경 그대로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강 동편의 북구 구포동과 사상구 학장동의 산자락 아래에는 고층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폭우로 쓰러진 벼를 일으키던 주민 손기덕(孫基德·60·부산 강서구 대저1동)씨가 털어놓은 한탄을 듣고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일 아침, 마당을 나설 때마다 복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보존돼야 할 부산 시내 산들은 마구 깎아 아파트를 지으면서 오랫동안 살고 있던 평지의 부락은 온통 개발제한구역이라고 묶어놓았으니…. 도대체 망치질 한번 제대로 못하게 하니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그린벨트가 가져온 ‘기형적인 도시개발’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경남 김해군에 속했던 강서구 지역은 81년 부산시에 편입됐다. 96년 기장군이 부산시에 편입되면서 부산시의 면적은 2배로 늘어났다.

그러나 강서구와 기장군의 대부분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여있어 도시개발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었다.

특히 강서구의 경우 개발제한구역 보존을 위해 최근 해안을 매립해 조성한 주거 및 공업용지를 제외한다면 94%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실정이다. 그린벨트 지정도 주먹구구식이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그나마 건물 증개축 등 개발이 자유로운 일반지역이 조금 있는데 그곳은 산간지역이거든요. 현장에 한번도 와보지 않고 탁상에서 지도놓고 금만 그은 셈이죠.”

부산의 그린벨트는 행정구역 면적의 50.9%인 3백81.75㎢. 기초단체별 비율은 △기장군 86.7% △강서구 62.8% △금정구 60.2% △해운대구 55.5% △북구 47% △동래구 2%다.

그린벨트 지역안에는 모두 44개동에 3만4천가구 10만6천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생활에 필요한 건축물이 5만여동에 이른다.

이 곳에는 감시초소 16개소와 순찰함 1백83개, 경계석 1천7백50개가 설치돼 있다.

더욱이 일부지역은 그린벨트외에도 문화재보호구역(2.24㎢) 군사시설보호구역(10.48㎢) 상수원보호구역(93.5㎢) 등 이중삼중의 규제대상이다.

심지어 재래식 화장실을 손보기 위해 ‘손끝만 대도’ 전과자 신세가 될 정도라고 주민들은 불만을 털어놓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역을 떠나는 주민들이 늘어났고 대신 외지인들의 투기성 토지매입이 늘어났다.

그린벨트 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문모씨(49)는 “자녀들 학비 마련을 위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 2만여평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린벨트 내에서 공공사업은 마음대로 하면서 사유지는 무조건 제한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부산의 도심기능 분산을 주장하는 부산지역 도시공학 전문가는 물론 환경단체들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이성근(李成根·37)자연생태부장은 “그린벨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민이 고통받는다면 이를 최소화 시켜주는 것이 도리”며 “그린벨트를 소극적인 개발유보지로 보는데서 벗어나 생태적 벨트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올해 말부터 금정구와 강서구, 기장군 지역 그린벨트에 2002년 아시아경기대회 경기장 공사를 착공할 예정인 부산시 자체도 그린벨트가 시급히 조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우봉(金雨奉)부산시도시계획국장은 “부산은 동서로 걸쳐 있는 강서 기장지역의 그린벨트가 목을 죄고 있는 형상”이라며 “풀 것은 풀고 묶을 것은 묶는 합리적인 조치만이 제대로 된 도시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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