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한국경제 上]신용공황 오나?

  • 입력 1997년 10월 16일 19시 50분


《부도, 부도, 부도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기업들의 운명.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물고 물리며 함께 휘청거리는 난국. 정부가 갚겠다고 보증을 해도 외국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 상황. 끝내는 증시에 붕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는 이대로 추락하는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우리 경제가 부도사태 금리폭등 주가폭락 환율불안 등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은 대선 승리를 위해선 경제를 희생시켜도 좋다는 식의 작태를 보이고 있다. 재정경제원 등 정책당국은 설익은 시장주의를 앞세워 경제현안에서 발을 빼버렸다. 경제가 벼랑 끝에 섰다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청와대는 말이 없다. 지금 상황을 방치할 경우 금융기관의 부도사태로 이어지면서 신용공황과 산업자본 조달기능 마비, 대량실업, 국가신인도 추락 등이 현실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경제난국을 타개하려면 정치권은 물론이고 청와대가 경제살리기에 직접 나서야 하며 현 경제팀의 재정비도 고려해야 한다고 경제계는 주문한다. 경제의 종합성적표인 종합주가지수가 16일 드디어 600선 아래로 붕락했다. 환율불안과 금리폭등이 동반하고 있다. 금융시장 전체가 신용공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원화 환율은 달러당 9백15원을 돌파하려는 상승압력이 계속되고 있다. 채권시장에선 3년만기 은행보증 회사채 수익률이 연 12.55%로 전날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할부금융사와 파이낸스사 등 제3금융권의 어음할인율은 한달 전에 비해 무려 2∼3%포인트 뛰어오른 연 18%대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현장에선 지난 1월 한보그룹의 붕괴로 시작된 부도사태가 삼미 대농 진로 기아 쌍방울 태일정밀 등 기업 규모와 업종 구분없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들어 16일까지 부도를 내거나 부도유예대상이 된 상장회사만도 28개로 지난 93∼96년 4년간의 합계(26개사)보다 많다. 극소수 재벌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들이 부도우려 리스트에 올려져 있는 실정이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종금사들이 자금회수에 들어가면 그날로 부도날 기업이 한두개가 아니다』고 진단하고 있다. 기아사태로 골병이 든 자동차업계는 협력업체의 연쇄도산으로 생산기반의 붕괴마저 우려되고 있다. 섬유업계도 쌍방울그룹의 위기로 연쇄부도의 위협 속에 놓였다. 특히 호남에 연고를 둔 기업들이 많이 흔들려 호남경제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같은 경제상황에 대해 김대식(金大植)중앙대교수는 『경제난의 근본은 대기업의 연쇄부도에 있다』며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현 경제팀이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실물경제의 붕괴는 그대로 금융시장으로 이어진다. 종합금융사 등 제2금융권은 물론이고 제일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까지 정부와 한국은행의 특별지원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은 비자금 폭로전으로 밤낮을 지새우고 있다. 아예 「경제죽이기」에 발벗고 나선 형국이다. 재경원은 종합주가지수가 570대로 폭락한 16일에야 「아, 이게 아닌데. 이러다간 곤란한데」 하는 반응을 보이며 「여론의 협조」를 당부하기에 급급하다. 강경식(姜慶植)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은 쌍방울의 화의신청, 태일정밀의 부도유예협약 적용, 주가폭락이 숨가쁘게 진행되던 15,16일 홍콩의 경제사교클럽에서 「10년 뒤의 아시아경제」에 대해 강연을 하며 고담준론하는 여유를 보였다. 강부총리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금융안정을 도모할 중요한 시기에 엉뚱하게 모든 금융행정 역량을 중앙은행제도개편에 쏟아버렸다. 그 중앙은행제도 개편안은 지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게다가 재경원은 기아사태는 개별기업의 문제인 만큼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며 발을 빼고선 쌍방울과 해태그룹에 대해선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이같은 일관성없는 정책 때문에 기업은 기업대로, 금융권은 금융권대로 운신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경제의 불확실성만 잔뜩 높였다는 지적이다. 이한구(李漢久)대우경제연구소장은 『우선 시급한 것은 부도유예된 기업들의 처리문제를 빨리 매듭짓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대식교수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기업현안을 시급히 교통정리해야 하며 재경원도 욕을 먹더라도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정치권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책임하고 무모한 정쟁국면을 슬기롭게 타개하고 국민 잠재력을 경제회생에 모을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규진·백우진·이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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