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부도공포 확산]「주먹구구식 과잉투자」禍 불렀다

  • 입력 1997년 7월 25일 20시 22분


최근 1년새 9개 그룹이 쓰러졌고 특히 올들어서만 한보 삼미 등 5개그룹이 부도가 났거나 부도유예조치로 응급처방을 받고 있다. 「재벌들의 부도 도미노양상」이다. 작년 이후 불황이 깊어지면서 재벌의 선단식(船團式) 경영과 외형위주의 성장전략이 더이상 먹혀들지 않게 됐다. 경기침체로 자금회전이 막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재벌의 「듬직한 밑천」이었던 부동산은 팔리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 기업경영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벌들은 최근까지 몸집 불리기에 열심이었다. 불황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작년 이후 30대 재벌들의 계열사수는 6백69개에서 8백19개로 늘어났다. 지난 95년부터 사업구조조정을 추진해온 두산그룹만이 1개가 줄어들었을 뿐 삼성그룹의 경우 80개로 25개가 늘어난 것을 비롯, 30대 그룹이 평균 5개씩 늘어났다. 최근 부도유예적용대상이 된 기아그룹은 자동차전문그룹이면서도 문어발식 확장으로 어려움을 자초한 대표적인 사례. 기아그룹은 자동차와 관련없는 특수강과 건설을 비롯, 아파트 청소용역업에까지 사업을 확장해 2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특수강 수요를 제대로 전망하지 못한채 1조원을 쏟아부어 결국 그룹성장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부도설로 홍역을 치른 뉴코아는 지난 95년말 자기자본비율이 9.8%(총자산 1조9천6백60억원, 자기자본 1천9백22억원)로 30대 그룹중 밑에서 다섯번째. 하지만 뉴코아는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섰던 지난 95년이후에도 호텔사업 및 할인점 등으로 사업확대를 계속하다가 결국 자금난 때문에 지난달 축소경영으로 돌아섰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의 경우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이자 등 금융비용의 비율, 즉 금융비용률이 94∼95년에 5.6%나 됐다. 일본(1.6%) 대만(1.7%)의 세배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차입경영을 해온 기업들은 불황이 닥칠 경우 영업침체와 막대한 금융비용 때문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면서 『재무구조가 나쁘니 불황만 닥치면 감원말고는 버틸 재간이 없다』고 지적한다. 진로 우성 건영 등의 도산은 주먹구구식 과잉투자가 원인으로 꼽히는데 요즘은 유통부문의 과잉투자문제가 심각하다는 평가다. 「쇼핑의 천국」으로 불리는 경기 일산신도시에는 인구 35만명 규모에 E마트 까르푸 마크로 그랜드마트 킴스클럽 등 5개의 대형 할인점과 그랜드백화점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방만한 인력관리가 기업부실화의 한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기아그룹의 사례에서 다시 한번 증명됐다. 기아그룹은 주인이 없다는 특수 조건까지 겹쳐 인사관리의 사각지대가 컸다는 지적이 그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한 직원은 『노조에 상근 30명, 비상근 30명이 소속돼 있는데 비상근이더라도 실제로는 생산라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기아그룹은 최근 상임고문 등을 맡아온 23명의 그룹 원로 인사들을 퇴진시켰다. 기아는 이들 고문진에게 고문 자문 촉탁 등의 이름으로 자리를 제공하고 상임 여부에 관계 없이 4천만∼1억원의 높은 연봉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문진은 부도유예협약이 적용되기 전에는 36명이었다. 10명의 고문을 비상임으로 두고 있는 현대자동차와는 대조적이다. 〈이영이·허문명·이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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