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브랜드 새전략]『노 세일』 최고는 깎지 않는다

  • 입력 1997년 4월 14일 07시 59분


11일 오전 세일행사가 막 시작돼 고객들로 붐빈 서울의 한 백화점 여성의류 매장. 『아니 다른 제품들은 다 20, 30%씩 깎아주는데 여기는 왜 정가를 받는거죠』(고객) 『우리 제품은 세일을 하지 않거든요』(점원) 세일 기간에도 세일을 하지 않는 이른바 「노세일」(No Sale)전략이 새로운 마케팅전략으로 번지고 있다. 끝없는 세일전쟁 속에서 가격파괴를 거꾸로 「파괴」하는 것. 이번 백화점 세일에서는 3백여 브랜드의 제조업체들이 노세일을 선언했다. 고급 브랜드뿐 아니라 일부 중가품도 노세일에 가세했다. 영우 이디엄 마이네임 베이직 리바이스 시스템 EnC 나이스클럽 온앤온 오브제…. 가격파괴의 홍수속에서 이들은 왜 정가를 고수하는 위험한 시도를 하는 걸까. 『의류는 백화점 세일 자유화 이전부터 1년 내내 세일을 해왔습니다. 이런 무차별적인 세일 바람속에서 가격경쟁은 결국 제 살 깎아먹기죠. 그보다는 차별화된 이미지로 승부하는 것이 결국 이익이라고 보고 올들어 노세일로 돌아섰습니다』(여성복제조업체「데미안」丁寬植·정관식영업부차장) 데미안은 노세일 고급브랜드라는 「차별화 전략」을 위해 회사로고를 바꾸는등 기업이미지 변신을 시도중. 역시 올해 노세일 브랜드로 새 출발한 의류업체 대하패션도 득실계산을 끝냈다. 『상품의 질을 높이고 적정물량과 적정가격을 제시한다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줘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봅니다』(판촉담당 임원) 국내에 노세일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90년대초부터. 일부 수입품이나 라이선스 브랜드 중심이었다. 최근에는 국산 중에서도 노세일에 가세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구매의식 변화가 가장 큰 배경. 예전의 소비자들에겐 싼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요즘엔 점차 「마음에 들면 비싸도 상관없다」로 바뀌고 있는 것. 『노세일 브랜드는 그만큼 품질에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서 믿고 사지요』(주부 전희연씨·34·서울 강남구 개포동) 노세일의 증가는 「거품가격」의 조정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옷은 제 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말처럼 옷값에는 「거품」이 많은 것이 현실. 의류업체들은 신제품의 가격을 매길 때 재고비용까지 얹어 부풀려왔다. 그래서 재고부담이 큰 고급 옷일수록 정가는 비싸진다. 그러나 유통업계의 심한 경쟁과 할인점의 급증으로 이 거품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거품빼기는 먼저 가격파괴로 나타났다. 최근 1, 2년 사이 유행한 「노마진 세일」이 한 패턴. 이 방식은 「반짝 경기」를 탔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부터는 세일기간 자유화로 가격파괴의 매력이 더욱 퇴색했다. 1년 내내 계속되는 세일로는 더 이상 고객을 끌 수 없게 됐다. 그래도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할 것인가. 새 활로를 찾던 업체중 상당수가 「출혈경쟁은 이제 그만」을 외치며 적정가격을 내세운 노세일의 깃발아래로 모인 것. 쁘렝땅 백화점 의류담당 김영록대리(34)는 세일 자유화조치 이후의 의류시장 상황을 「양극화」로 전망한다. 사시사철 세일하면서 가격파괴로 밀고 나가는 쪽과 노세일 브랜드처럼 차별화된 이미지로 승부하는 쪽의 양립. 소비자들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러나 왠지 혼란스럽다. 『옷값이라는 것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어떤 제품은 80%씩 할인하는데 다른 메이커는 정가대로 받는다니. 업체들에 우롱당하는 기분이에요』(주부 이모씨·33·서울 노원구 공릉2동) 『소비자가격이 제조원가의 3∼5배라는 것이 옷인데 세일을 않겠다는 것은 부유층의 허영심을 노리는 판매전략 아닌가요』(회사원 김수경씨·여·서울 관악구 신림동) 노세일브랜드의 원조격인 서광은 11년 동안 바겐세일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매년 30%를 웃도는 판매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 노세일 브랜드 업체들은 제2의 서광을 꿈꾼다. 과연 몇 업체나 그 꿈을 이룰까. 〈이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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