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지 新처세술 회자]결정회피-부하책임-질질 끌기

  • 입력 1997년 3월 29일 20시 15분


과천 관가에는 요즘 「신(新)처세술」이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장관되고 싶은 사람이 가져야 할 세가지 처세비결」이다. 첫째, 책임질 결정은 되도록 피하라. 둘째, 책임질 일이 생기면 부하직원들에게 미루라. 셋째, 어느 것이 옳은 정책판단인지 모를 때는 머뭇거려라. 한보 특혜대출 과정에서 은행장들에게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韓利憲(한이헌) 李錫采(이석채)전 청와대 경제수석들에 대해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것인지 논란이 일면서 나오는 얘기다. 이익집단이 얽혀있는 복잡한 정책결정과정에서 쉽게 판단하지 말고 튀지 말며 비바람이 치든, 눈보라가 치든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출세를 보장받는 최고의 처세술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피할 수 없어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되면 나중에 꼬리가 잡히지 않도록 결재서류에 아예 국장 사인란을 지워 과장전결로 끝내고 지시할 사항이 있으면 「구두」로 하라는 것이다. 후에 문제가 생기면 『과장 전결사항이라 나는 몰랐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특히 이전수석과 오래 일했던 재정경제원 간부들이 최근의 사태 진전을 지켜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재경원의 국장급 간부는 『이전수석은 당당히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두드러지고 복잡한 정책결정을 놓고도 주저없이 자기소신을 밝히는 사람』이라며 앞서 지적한 세가지 「덕목(?)」을 갖추지 못해 요즘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간부는 『전임 수석들이 직무와 관련해 돈을 받았다면 모르겠으나 만약 일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됐다면 설거지 열심히 한 사람한테 접시 깨뜨렸다고 욕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보가 일시적인 위기를 넘겨 공장이 완공된다면 채권확보도 가능하고 수익도 보장될 것이란 정책적 판단에 따라 대출을 해주라고 했다면 직권남용죄 적용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세한 내막은 어차피 재수사에 따라 밝혀지겠지만 소신있는 관리가 벌을 받고 책임을 부하에게 돌리는 장관은 살아 남는 풍토를 겨냥한 관리들의 냉소적인 처세관에는 씹어볼만한 대목이 있다. 정권말기의 누수현상까지 겹쳐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확산되는 모습이다.<허문명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