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후유증/풀어야할 숙제들]은행에 「주인」이 없다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백승훈 기자] 『빅뱅(금융대개혁)요? 다 필요없습니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고 자율성을 보장하면 한보철강같은 사고가 왜 생깁니까』 한보철강이 부도난 뒤 온갖 의혹들이 제기되자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한보사태는 관치(官治) 정치(政治)금융의 산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결국 한보부실은 정치권 외압과 낙후한 금융관행의 「공범」인 셈이다. 은행에 주인이 없다보니 은행장 선임은 물론 대출과정에서도 외압이 쉽게 먹혀들어간다는 얘기다. 과거 5,6공 때는 은행장이 되려면 李源祚(이원조) 琴震鎬(금진호)씨와 같은 정부실력자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 이 정부 들어서는 외부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은행장 후보추천위원회 제도가 도입됐지만 외풍을 타기는 마찬가지. 정부 대신 정치권 실세의 입김이 거세졌다. 형식상 주주대표 등 9명으로 구성된 행추위(行推委)위원들이 행장을 선택하게 돼있어도 실질적으로는 권력실세의 영향력이 공공연히 작용해 왔다. 실제 한보철강 채권은행중 하나인 제일은행은 작년 행장이 대출비리로 구속되자 후임 행장자리를 놓고 말이 많았는데 결국 PK(부산 경남)출신인 당시 申光湜(신광식)전무가 지연 학연과 연결된 실세들의 힘을 동원, 행장에 올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은행내에서 행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전횡에 가깝다. 통상 30억원까지의 대출은 은행장 전결사항이다. 30억원이상 대출은 이사회 결정사항이지만 역시 행장 의사가 절대적이다. 시중은행 임원은 『임원 인사권을 가진 행장의 의견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청탁에 의한 거액대출이 이렇게 결정될 경우 신용평가는 요식적 행위에 불과하다. 외국은행의 경우 대출결정권한이 하부로 많이 넘어가 행장의 전횡은 찾아보기 어렵다. 체이스맨해턴은행 서울지점의 金洙龍(김수용)본부장은 『대부분의 대출은 서울지점에서 결정한다』며 『서울지점 내에서도 한사람의 전횡을 막기 위해 평소 심사부에서 기업에 대한 심사를 해오다가 대출결정시 의견을 내면 임원들이 토론을 거쳐 결정한다』고 말했다. 인사외풍도 근원적으로는 금융기관 내의 인사 난맥상으로 외부의 「빽」을 동원하고 남을 모함하는 풍토가 만연해 빚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양대 姜柄晧(강병호)교수는 『곁가지 대책보다는 은행에 주인을 찾아줘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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