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부도/커지는 의혹]대출외압 「실체」있나

  • 입력 1997년 1월 24일 20시 14분


한보미스터리가 꼬리를 물고 증폭되고 있다. 특히 한보철강의 부도를 계기로 은행권의 대출현황이 공개되면서 대출과정에 「외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은행들은 한보철강에 수조원의 돈을 빌려주면서 하나같이 담보확보에 소홀했다. 단돈 1원도 문제삼는 은행이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 한보철강에 대한 은행권의 여신은 대출금 2조4천87억원 지급보증 1조2천7백60억원 등 3조4천7백87억원 규모. 이 가운데 은행권의 담보액은 2조6천9백40억원에 불과, 담보부족액이 7천8백27억원에 달한다. 특히 은행들은 동일인 여신한도규정까지 피해가며 은행계정이 아닌 신탁계정에서 대출을 해줬다.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동일인 여신한도는 대출금이 은행자기자본의 15%, 지급보증은 30%이내로 제한돼 있다. 한보그룹의 주요채권은행은 은행계정대출이 동일인여신한도에 육박하자 △제일 2천6백84억원 △조흥 2천6백81억원 △외환 1천4백50억원을 대출해줬다. 이처럼 은행들의 대출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은 한보의 아산만 철강단지사업계획이 계속 확대되면서 사업비가 당초 1조1천억원에서 5조7천억원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은 누가 봐도 사업규모가 무모하게 확대되는데도 사업타당성에 대한 조사를 한차례도 하지 않고 「무작정」 지원을 해왔다. 또 한보철강이 시설자금을 운영자금 등으로 전용했는데도 이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의 행동은 더 이해가 되지않는 대목이 많다. 정총회장은 채권은행들이 「부도처리 불가피」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는데도 이를 일축, 경영권포기각서제출을 끝까지 거부했다. 정총회장이 청와대와 채권은행의 기류를 감지하고 경영권포기각서를 제출했더라면 그룹해체라는 최악의 상황까진 안갔을 것이라고 정부당국자는 말한다. 한보측에서는 『정총회장의 철강산업에 대한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액면대로 믿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재계와 금융가에서는 정총회장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즉 정치실세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부도까진 가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보철강의 인수기업으로 거론되는 기업들은 벌써부터 몸을 사리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보그룹과 정치권실세와의 커넥션은 재계에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내년 정치판도가 변할 경우 청문회소환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한보철강을 누가 인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야당이 올해 대선을 앞두고 한보철강의 비호세력에 대해 정치공세를 준비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미리 한보철강을 정리,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보를 버렸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白承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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