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대사 못 외우면 배우 관둬야”…눈시울 붉힌 배우들 기립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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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5월 8일 12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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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배우 이순재가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공연을 펼쳤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배우 이순재가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공연을 펼쳤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69년 차 배우 이순재(90)가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기에 대한 열망과 도전 정신을 한 편의 연극 무대로 꾸며 후배 배우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이순재는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약 10분간 공연을 펼쳤다.

이순재는 연극 오디션에 접수한 참가자를 연기했다. 심사위원을 앞에 둔 채 자리에 앉은 이순재는 “늙은 배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온 접수 번호 1번이다”라고 말했다.

심사위원이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올해로 90세가 된 이순재”라며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드라마 175편, 영화 150편, 연극은 100편 미만이지만 숫자를 다 기억하진 못한다”고 밝혔다.

배우 최민식이 이순재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배우 최민식이 이순재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있느냐는 물음엔 “오늘 오신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다 함께 해보고 싶다”면서도 최민식을 언급했다. 이어 “영화 ‘파묘’ 잘 봤다. 정말 애썼고 열연했다. 언제 그런 작품을 같이 해 보자. 내가 산신령 역을 하든 귀신 역을 하든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최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순재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존경을 표했다.

또 이순재는 배우 이병헌을 향해 “우린 액션을 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치고받을 순 없고 한국판 ‘대부’를 찍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말론 브랜도 역할을 하고, 이병헌 배우가 알 파치노 역할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배우 이병헌이 한국판 ‘대부’를 찍자는 이순재의 말에 웃어 보였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배우 이병헌이 한국판 ‘대부’를 찍자는 이순재의 말에 웃어 보였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대사량이 많은데 외울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대본 외우는 거요? 그건 기본입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순재는 “대본을 외우지 않고 어떻게 연기하나. 배우의 생명은 암기력이 따라가느냐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미안합니다. 다시 합시다’를 여러 번 하면 그만둬야 한다”며 “대본을 완벽하게 외워야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다. 대사에 혼을 담아야 하는데 못 외우면 혼이 담기겠나. 대사 외울 자신 없으면 배우 관둬야 한다. 그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연차가 높은데 왜 아직도 연기에 도전하냐는 물음엔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다. 몸살을 앓다가도 큐사인이 떨어지면 일어난다”며 “그런데 연기가 쉽진 않다. 평생을 해오는데 안 되는 게 있다. 그래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공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항상 새로운 작품, 역할을 도전해야 한다. 새롭게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고민하는 게 배우다. 그래야 새로운 역할이 창조된다”며 “그동안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 이만하면 됐다는 배우 수백 명이 없어졌다. 노력한 사람들이 남아있는 거다.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게 이거다. 완성을 향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했다.

배우 엄정화가 이순재의 무대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배우 엄정화가 이순재의 무대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즉석에서 연극 ‘리어왕’의 한 장면을 연기했다. 그는 무대 중간으로 이동해 안경을 벗고 한때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리어왕이 자식에게 버려져 광야에서 비바람 맞으며 했던 명대사를 선보였다. 지난해 이순재는 전 세계 최고령으로 ‘리어왕’에 출연한 바 있다.

연기를 마친 이순재는 관객석을 향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심사위원에게 “나 꼭 시켜야 해”라고 말하며 퇴장했다.

배우들은 내내 이순재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이순재의 무대가 끝난 뒤 배우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유연석과 엄정화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배우 유연석이 이순재의 무대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배우 유연석이 이순재의 무대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튜브 채널 ‘백상예술대상’ 영상 캡처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이순재#백상예술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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