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 페르메이르에 이어 뜨거운 관심 받는 ‘이 작가’ [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5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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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인 암스테르담의 레익스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렘브란트의 ‘야경’을 볼 수 있고, 작년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회고전을 열어 세계적 관심을 얻은 이 미술관에서 프란스 할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네요. 암스테르담=김민 기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익스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이 미술관은 지난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회고전을 열어 전 세계 미술 애호가를 설레게 만들었던 곳인데요. 이번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와 함께 ‘네덜란드 미술 3대 거장’으로 불리는 프란스 할스 회고전이 열립니다. 전시 개막 2주 만에 14만 명이 관람하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할스는 프랑스 루브르나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지나치듯 보고 ‘흥미롭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세히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술에 취한 사람, 활짝 웃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처럼 익살스럽고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었는데요.

전시장에서 그런 그림들을 만나며, 권위와 허세를 내려 놓은 아주 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기분에 묘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전시의 큐레이터인 프리소 라메르처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할스는 어떤 예술가였는지, 또 그의 작품이 왜 중요한지 그와 나눈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친근하고 호탕한 할스의 사람들

류트를 연주하는 사람, 1623년 경, 캔버스에 유채, 70 x 62 cm.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레익스미술관 제공

어떤 초상화들은 그것을 의뢰한 사람의 부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할스의 초상에서는 플랑드르 지역 특유의 현실주의와 섬세함이 돋보였습니다.

자신의 가장 멋진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포즈도 취하고 환하게 웃는 그림 속 사람들을 보며… 할스가 비록 수백년 전 인물이지만 ‘실제로 만나면 어떤 사람이었을까?’가 가장 먼저 궁금했습니다.

‘영감한스푼’과 인터뷰하는 프리소 라메르처. 이 전시는 레익스미술관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큐레이터인 프리소 라메르처와 같은 분야 주니어 큐레이터인 타마 판 리센이 기획을 맡았습니다. 제가 전시를 보고 암스테르담을 떠나는 바람에 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큐레이터님은 그의 작품과 자료를 거의 다 보셨잖아요. 그걸 토대로 볼 때 ‘인간 할스’는 어떤 사람이었을 것 같나요?

“사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아요. 할스의 첫 전기는 그가 죽고 50년이 지난 뒤에야 나오거든요. 그렇지만 할스가 성격 좋은 애주가였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다만 당대 사람들은 할스의 느슨한 붓터치를 보고,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붓도 휘갈긴다고 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할스는 인간적으론 친근했지만 예술가로서는 야망이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17세기 초반 네덜란드가 아니라 전유럽의 레벨에서 그림의 다른 방식을 찾으려 했던 극소수의 예술가 중 한 명이죠.

이 때 이전 그림이 아주 깔끔하고 붓터치가 보이지 않는 매끈한 그림이 주를 이뤘다면, 안토니 반 다이크, 벨라스케스, 렘브란트가 다른 시도를 했고 할스도 이들과 같은 결에 있어요. 아주 빠른 시기에 느슨한 붓터치를 급격하게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가입니다.”

와인잔을 들고 웃는 소년, 1630년 경, 나무에 유채, 38 x 38cm, 독일 슈베린 국립 예술품 컬렉션 소장. 레익스미술관 제공

- 할스의 느슨한 붓터치를 전시에서도 강조했어요. 유럽 미술사의 맥락에서 이러한 붓터치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느슨한 붓터치는 회화가 결국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물질성을 완전히 드러내거든요. 지금도 화가의 손짓이 그대로 드러나기에 이런 그림들은 모던하게 느껴집니다. 할스도 자신이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렸다는 걸 숨기지 않아요.

옷의 단추 하나하나가 다 보이지도 않고 디테일을 다 그리지도 않지만 그림 속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죠. 이렇게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은 붓터치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인데, 그 붓터치가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 점이 아주 흥미롭고, 할스도 이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커플의 초상. (아이작 아브라함즈 마사와 베아트릭스 판 데 라엔 추정), 1622년 경, 캔버스에 유채, 140 x 166.5 cm, 레익스미술관 제공.

- 할스의 이런 스타일을 그의 주문자나 후원자들이 새롭고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여 좋아했나요? 아니면 할스에게는 리스크가 있는 비즈니스였나요?

“1620~30년대 할스는 아주 인기 작가였어요. 그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붓터치를 밀고 나갔기 보다는 상대방에 따라 스타일을 바꿨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한 가지 제가 추측하는 건 할스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그릴 때는 좀 더 느슨한 붓터치를 과감하게 시도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마사르 부부의 초상을 보면 초기에 그린 것임에도 과감한 붓터치를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마사르 부부와 할스가 친한 사이였다는 것은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요즘도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예술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를 과감함으로 드러내려 하잖아요. 마사르 부부 역시 이런 관점에서 할스의 아방가르드한 붓터치를 받아들이고 시도해보려 했을 수 있어요.

그게 아니라 그냥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얻고만 싶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스타일이 나타나지 않아요. 할스는 두 고객 층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던 사람이에요.”

‘젊은 여자’(1632, 왼쪽)와 ‘즐거운 술꾼’(1625)이 걸린 전시장 모습. 레익스미술관/알베르티너 데이케마 제공

- 할스가 술에 취해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겠지만, 붓터치에서 흥겨운 성격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은 아닌가요?

“맞아요. 그의 그림에는 아주 과감한 무언가가 있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성격도 작용했을 거에요. 할스는 절대 소심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렇게 그릴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자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하죠.

그러나 할스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확신하기는 어려워요. 물론 동시대 사람이나 화가들이 할스에 대해 뭐라고 얘기했는지 약간의 기록이 남아 있긴 합니다. 거기서 할스가 밖으로 다니기를 좋아하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나와요.

또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고 정작 자기가 할 말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도 어렵죠. 그가 그리는 인물들 역시 호탕하게 웃거나 활발한 모습이니. 그런 점이 할스 성격의 일부임은 틀림없습니다.”

(다음 뉴스레터로 이어집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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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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