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프랑스로 이끈 포레, 색채·자유로움에 반해”

  • 뉴시스
  • 입력 2024년 2월 21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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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처음 들은 게 중학교 때였어요.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과 다양한 색채에 반했죠. 그때 프랑스 유학을 결심했어요.”

가브리엘 포레(1845~1924)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39)의 삶을 뒤흔든 작곡가다. 예원학교 재학 중 들은 포레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 그를 파리로 이끌었다. 박지윤은 파리고등국립음악원, 모차르테움 국립대학을 거치며 프랑스의 문화와 음악을 흡수했다.

2004년 티보 바가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최연소 1위, 2005 롱 티보 크레스팽 국제 콩쿠르, 2009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 등으로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프랑스 페이 드 라 루아르 국립 오케스트라 악장을 지냈고, 2018년에는 프랑스 최정상 악단인 라디오 프랑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의 동양인 악장이 됐다.

박지윤은 포레 서거 10주년에 맞춰 오는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올라 연주회 ‘꿈을 꾼 후에’를 연다. 포레의 바이올린 작품 전곡을 연주하는 무대다. ‘프랑스의 위대한 로맨티스트’로 불리는 포레는 프랑스 음악의 기초를 쌓은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꿈을 꾼 후에’, ‘달빛’ 등 서정성 짙은 작품들이 유명하다. 카미유 생상스의 제자이자 모리스 라벨의 스승이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박지윤은 “포레는 저에게 굉장히 특별한 작곡가”라며 “올해가 서거 100주년인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소나타 1번 외의 다른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지윤은 오랜 지기인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함께 무대에 올라 청년 포레에게 성공을 안겨준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난청 등으로 고통받은 포레의 음악 인생이 응축된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Op.75), 자장가(Op.16), 로망스(Op. 28) 등 세 곡의 소품을 들려준다.

“다섯 곡이 모두 주옥같아요. 포레만의 스타일, 포레가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고, 말년까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 나갔는지 알 수 있어요. 1번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랑받는 곡이고, 2번의 경우 포레가 청력을 상실해갈 때 쓰여진 곡이에요. 한 연주회에서 초기작과 후기작을 같이 들으며 그의 음악이 어떻게 변화했는 지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박지윤이 몸 담고 있는 라디오프랑스필은 한국의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5년간 음악감독을 맡았던 악단이다. 한국인으로는 박지윤과 함께 바이올리니스트 이은주가 제2바이올린 부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지윤은 “정명훈 선생님이 오래 계셨고, 지금도 명예 음악감독을 맡고 있어 단원들 모두 한국에 친숙하다”며 “단원들이 거의 프랑스인들이지만 다들 개방적이고 열려 있어서 악장을 하며 특별히 힘든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휘자 정명훈,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한 무대에 오른 지난해 10월 파리 공연은 그녀에게 정말 특별했다. “한국인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휘자도, 악장도, 협연자도 한국인인 경우는 정말 드물어요. 괜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어요. 개인적으로 임윤찬의 팬이기도 해요.”

박지윤은 라디오프랑스필 악장으로 활동하면서 실내악 연주자로, 솔리스트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5년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출신 피아니스트 이효주·첼리스트 이정란과 ‘트리오 제이드’를 결성, 꾸준히 활동 중이다. 지난해에는 남편인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앙 줄만과의 국내에서 바이올린 듀오 리사이틀을 열기도 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라디오프랑스필은 3명의 악장을 둬요. 그래서 실내악, 솔리스트 활동을 할 시간을 낼 수 있죠. 오케스트라, 실내악, 솔리스트의 밸런스가 매우 좋아요. 이 활동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 시너지를 내죠. 하나만 떼서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밖에서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바이올리니스트지만 집에서는 여덟살 딸을 키우는 엄마다. 집에서 음식을 해 지인들을 초대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음악가와 엄마의 삶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라디오프랑스필 오디션 공고가 났을 때 딸이 한살 반이었어요. 딸을 보살피며 오디션 준비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죠. 시댁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오디션을 준비했죠. 남편도 가정적이에요. 정말 힘들 때는 한국에서 어머니가 와서 아이를 봐주시기도 해요. 바쁘지만 가족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이번에도 딸과 함께 한국에 왔어요.”

박지윤은 음악에서 행복을 느끼는 연주자로 남고 싶다. “건강하게 오래 음악을 하고 싶어요.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음악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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