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찔하게 솟아오른 매혹… 목숨 걸고 오른 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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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 근대 이전엔 “악마의 거처”… 19세기 중반에야 숭배의 대상으로
식민주의가 만든 ‘에베레스트’… 산의 인류학-종교사 흥미진진
◇산에 오르는 마음/로버트 맥팔레인 지음·노만수 옮김/496쪽·2만6000원·글항아리

세계 최고봉들에 도전하는 일은 명예와 인기를 가져다주지만 높은 산에는 이를 훨씬 뛰어넘어 목숨을 걸 만한 매혹이 있다고 산악인들은 말한다.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세계 최고봉들에 도전하는 일은 명예와 인기를 가져다주지만 높은 산에는 이를 훨씬 뛰어넘어 목숨을 걸 만한 매혹이 있다고 산악인들은 말한다.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왜 산에 오르느냐고? 거기 산이 있으니까.”

20세기 초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의 말이다. 귀에 닳은 표현이지만 지상의 최고봉들이 두려움을 넘어 선사하는 매혹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숨쉬기조차 힘든 고산에 왜 오르는 걸까.

저자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집에서 맬러리의 도전을 담은 ‘에베레스트와의 승부’를 읽고 매혹됐다. 산과 극지를 향한 도전기를 닥치는 대로 섭렵한 뒤 알프스에서 히말라야까지 세계의 고봉을 누비는 등산가이자 산악 전문 저술가가 되었다.

그가 정의하는 산은 “땅이 솟아오른 자연의 형태와 인간의 마음이 함께 구성한 ‘마음의 산’이며 문화적 산물”이다.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산은 악마가 머무는 곳이었고, 목숨을 건 등산은 정신 이상 취급을 받았다. 19세기 중반에야 ‘높은 곳에 대한 숭배’가 등장했다. 다윈은 “높은 곳의 웅대한 풍경이 전해주는 승리감과 자신감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산에 도전하는 것에는 제국주의적 욕망도 함께했다. 19세기에 위험한 등반은 남자다움과 적자생존, 정복자의 자격을 일깨웠다.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짜릿한 자극이었다. 세계 최고의 봉우리는 네팔인에게 사가르마타, 티베트인에게 초모룽마로 불렸지만 영국인이 ‘에베레스트’라는 새 이름을 붙였고 다른 봉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져갈 수 없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자 일종의 식민주의였다.

책의 각 장은 지질학의 역사, 고산의 식물학, 지도의 역사, 산을 둘러싼 인류학과 종교사로 채워진다. 그러면서도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느슨해지지 않는 것은 저자와 다른 등산가들의 체험기가 긴장과 호기심을 놓지 않도록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첫 고산 등정이었던 스위스 알프스의 라긴호른부터 고난의 도전이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쫙 펴서 포크처럼 눈을 찍으며 오르다 손가락을 잃을 뻔했다. 이후에도 바윗덩어리에 옷을 찢기면서 간발의 차로 추락을 면하고,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를 산으로 이끌었던 맬러리는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됐다가 1999년 시신으로 발견됐다. 책 말미는 재구성한 맬러리 최후의 도전기로 채워진다.

바이런에서 바슐라르까지 사색의 달인들이 산과 관련해 남긴 수상록과 체험기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괴테는 달빛 비치는 몽블랑을 보며 “지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로 더 높은 곳의 천체에 속한 것 같다”고 썼다.

이 책은 저자가 27세 때인 2003년 쓴 데뷔작으로, 서머싯 몸 상, 가디언 데뷔 저서상, 선데이타임스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그 사색은 20대임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깊다. “산에서 무언가 잘못되면 시간은 산산이 부서지고 순간과 사건만을 둘러싸고 자신을 재구성한다. 모든 사정은 새로운 시간으로 이끌리거나 새로운 시간을 선회하여 빠져나온다. 일시적으로 당신은 새로운 존재의 중심축을 갖게 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높은 산#악마의 거처#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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