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중세와 르네상스 사이 책이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피렌체 서점 이야기/로스 킹 지음·최파일 옮김/640쪽·3만5000원·책과함께

1416년 여름 독일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서가. 먼지 쌓인 장서가 가득한 이곳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의 필경사 포조 브라촐리니(1380∼1459)가 ‘보물’을 찾고 있었다. 혹시 중세 암흑기를 거치며 자취를 감춘 고대 그리스·로마의 명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운명처럼 ‘웅변가교육(Institutio Oratoria)’을 만났다. 고대 로마 수사학자 쿠인틸리아누스가 연설 이론을 12권으로 집대성한 책으로, 500년간 자취를 감췄던 보물이었다. 그는 32일 만에 전권을 필사해 피렌체로 책을 들여왔다. 잠들었던 고대의 지혜는 이렇게 깨어났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키아벨리…. 15세기 르네상스라고 하면 이 같은 이름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사람 이전에 ‘책’이 있었다. 영국의 역사 저술가인 저자는 15세기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필경사와 서적상 등 ‘책 파수꾼’의 이야기를 통해 르네상스 부흥사를 추적한다.

그중 중요한 인물은 피렌체의 서적상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1422∼1498). 그는 모든 책을 손수 필사해 발간하던 시절 1000권이 넘는 고대 명저를 판매해 ‘세계 서적상의 왕’으로 불렸다. 11세 때부터 서점 조수로 일을 배운 그는 피렌체의 귀족 메디치가의 대리인으로 유럽 수도원에서 막대한 양의 필사본을 사들였다. 시뇨리아 광장 인근에 있던 그의 서점은 지식인들이 매일 토론을 벌이는 만남의 장이었다. 저자는 “책을 모으고, 지키고, 퍼뜨린 이들이 있었기에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강조한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메디치 가문이 정치적 혼란을 겪을 때에도 굳건했던 다 비스티치의 서점 자리에는 현재 피자 가게가 들어서 있다. 16세기 초 유럽 전역에 255개가 넘는 인쇄소가 생겨나며 고서를 필사하는 서점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하지만 15세기 ‘책 사냥꾼’이 다시 찾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은 무지를 밝히는 등대처럼 여전히 빛나고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중세#르네상스#피렌체 서점 이야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