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 거장 다룬 다큐 ‘물방울…’
아들 김오안 감독이 5년간 만들어
“6·25때 가족 잃은 죄책감 시달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1929∼2021)의 별명은 너무나 유명하다. 1971년 ‘밤에 일어난 일’을 시작으로 줄곧 물방울만 그려 ‘물방울 화가’라 부른다.
김 화백의 둘째아들인 김오안 영화감독(48·사진)은 언제나 궁금했다. “왜 당신께선 평생 수십만 개의 물방울만 그리는 ‘예속’을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그 답을 찾아 김 감독은 카메라를 들었다.
2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아들이자 한 명의 예술가인 김 감독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재해석이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6일 만난 그는 “아버지 작품은 아름답지만, 아름답다는 이미지가 내밀한 깊이를 숨겨왔다”며 “화가 내면의 고통과 철학의 깊이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스크린에서 김 화백은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작업 땐 고독한 수도승 같았지만 과거를 회상하면 단박에 울음을 쏟아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평생 가슴을 짓눌렀다. 김 화백은 “물방울은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우고 싶다”고 털어놨다.
촬영은 쉽지 않았다. 김 감독은 “아버지란 존재는 너무 가까우면서도 커서 거리감을 조절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영화는 2014년부터 5년 동안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만들었다. 어느덧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물방울 작품을 구상했던 40대가 된 아들은 오랜 궁금증을 풀었을까.
“글쎄요. 다만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말수는 적지만 옆에만 있어도 사랑을 느끼게 해준 이. 심각했지만 와인 한 잔 마시면 노래를 부르던 이. 세월이 흐르니 이젠 조금 아버지를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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