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퓰리처상’ 유일한 작가, 美시인 플라스 삶 조명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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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개막 뮤지컬 ‘실비아, 살다’
야수같은 문체로 고통-우울 토해내
3번의 자살 시도끝 31세에 생 마감
뮤지컬엔 실제 삶과 다른 결말 마련

뮤지컬 ‘실비아, 살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실비아(김주연·오른쪽)의 말을 루카스(최미소)가 들어주고 있다. 공연제작소 작작 제공
뮤지컬 ‘실비아, 살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실비아(김주연·오른쪽)의 말을 루카스(최미소)가 들어주고 있다. 공연제작소 작작 제공
“10년에 한 번씩 나를 해방시킬 죽음을….”

그에게 삶은 고통스러웠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올라탔던 기차처럼.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그는 ‘하차’를 감행했다. 더 이상 인생이란 기차에 실려 떠밀리 듯 종착역으로 가고 싶지 않을 때, 그는 10년마다 의식처럼 삶을 놓아버리려 했다.

서른한 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 당시 영미 문단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맹렬한 야수’와 같은 문체로 거침없이 고통과 상실, 우울을 토해냈다. 세상은 플라스의 시를 “여성답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십수 년 뒤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1981년)은 그해 예술성을 인정받아 퓰리처상을 안겼다. 지금껏 사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일한 작가다.

12일 개막한 뮤지컬 ‘실비아, 살다’(사진)는 기차가 감내해야 할 어둡고 긴 터널과도 같던 플라스의 삶을 곱씹었다. 그는 짧은 생애에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뮤지컬은 그의 삶과는 다른 결말을 마련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낙관과 희망으로 날아오르는 플라스의 생애를 펼쳤다. 대본부터 제작까지 아우른 조윤지 연출가(37)는 “그의 일기를 읽어 보니 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었다는 걸 느꼈다. 조금 더 뻔뻔하게 살았으면 어떨까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2013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조 연출가의 성향이 반영된 탓인지, 뮤지컬은 연극적인 향취가 짙다. 시인의 문장을 활용한 대사와 노랫말은 곱씹을수록 아름답다. 클래식과 아프리카 전통음악 등을 버무리고, 독특한 마임을 활용한 춤도 흥미롭다. 다만 따라가야 할 대사가 적지 않아 배우들의 전달력이 매우 중요하다. 쇼처럼 화려한 뮤지컬을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실비아 역 김주연 최태이 주다은, 테드 역 문지수 이규학.

8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TOM2관, 4만5000∼6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사후 퓰리처 상#美시인#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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