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예고된 지정학적 비극, 우크라이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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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지대/해퍼드 존 매킨더 지음·임정관 등 옮김/332쪽·1만8000원·글항아리

바야흐로 ‘지정학의 귀환’ 시대다. 미국과 각을 세우는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앞세워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흑해 연안의 요충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첨단기술로 통신혁명이 이뤄졌지만 지리는 여전히 세계정치와 경제를 규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약 100년 전 쓰인 지정학의 고전을 꺼내 봐야 하는 이유다.

영국 지리학자이자 정치인인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듬해인 1919년 이 책 1부를 썼다. 당시는 유럽에서 장기 평화를 가능케 한 ‘빈 체제’가 붕괴되고, 대규모 살육전이 벌어진 직후라 지식인들이 1차 대전의 원인과 재발 방지에 골몰하던 때다. 그런데 저자는 지리 관점에서 베르사유 체제를 분석하며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가능성을 점치는 선견지명을 보여줬다. 자연환경과 자원이 편재된 탓에 지정학적 요지를 차지하려는 팽창주의 경쟁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

저자는 북극해와 고비·티베트 사막, 알타이·힌두쿠시 산맥에 둘러싸인 유라시아 중심부(러시아 서부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티베트·몽골까지 포함)를 ‘심장지대(heartland)’라고 부르며 중시하고 있다. 해양세력에 맞서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천혜의 요새인 이곳을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는 것. 공교롭게도 구소련의 영토와 거의 겹친다. 2차 대전 종전 후 해양세력인 미국에 맞서 소련이 유라시아 대륙의 절대 강자로 부상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다, 산맥, 사막의 자연방벽에 둘러싸인 심장지대가 서쪽으로 동유럽에 열려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심장지대를 뚫을 수 있는 일종의 급소인 셈.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독소 불가침조약을 깨고 동유럽을 침공한 이유다. 이는 현재에도 유효한 이야기다. 심장지대 서쪽 경계에 있는 흑해 연안에 우크라이나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에서 지정학적으로 예정된 비극일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온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정학의 귀환#심장지대#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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