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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 훌쩍 넘는 역사”…알고가면 더 재미있는 靑

입력 2022-05-21 08:00업데이트 2022-05-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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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땅으로 불리던 청와대가 74년 만에 전면 개방됐다. 가볍게 방문해도 좋지만 알고 가면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청와대. 서울관광재단은 900년을 훌쩍 넘은 청와대의 역사와 건물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했다.

청와대가 자리한 북악산 남쪽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숙종은 1104년 북악산 아래에 별궁을 짓고, 이곳을 남경(고려시대 삼경의 하나)으로 삼았다.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 후원이 조성됐다. 이후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폐허가 되면서 방치됐다가 조선 말 고종 때에 이르러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무대라는 이름의 후원으로 재건됐다. 일제강점기 때는 그 자리에 조선 총독의 관사가 들어섰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총독 관사는 역대 대통령들의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됐다. 이후 1991년 ‘조선총독부의 관사를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어져 지금의 본관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청와대 본관, 정면에서 바라보면…
청와대 본관은 한옥에서 가장 격조 높고 아름답다고 평가 받는 팔작지붕을 갖췄다. 여기에 쓰인 한식 청기와만 15만여 개에 달한다. 청기와는 청자의 나라였던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궁궐 지붕을 만드는데 쓰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청기와를 만들기 위해선 전략 자산이자 화약의 핵심 원료인 염초(질산칼륨)가 다량으로 필요했다. 자연적인 초석 광산이 없던 한반도에서 염초는 그 생산이 매우 어려웠고, 군사용으로도 늘 재고가 부족했다. 그만큼 청기와는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됐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의 청기와는 창덕궁에 있는 선정전이 유일하다.

청와대 본관의 구조는 궁궐의 목조 건축 양식을 기본으로 한다. 청와대 본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현관 통로의 지붕과 본관 건물의 지붕이 계단처럼 연결된 듯 보여 거대한 파도의 푸른 물결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관 앞에는 대정원이라고 불리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청와대 본관에서 청와대 관저로 바로 가려면 소정원을 거쳐야 한다. 대정원이 넓은 잔디밭이라면 소정원은 아늑한 숲이다. 정원 사이로 난 숲길이 아기자기하다. 숲의 나무들이 햇빛이 파고들 틈이 없을 만큼 그윽한 그늘을 만든다.

관저로 넘어가는 길에는 수궁터가 있다.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던 곳이다. 이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는데, 조선총독부가 전각을 허물고 총독 관사를 지었다. 총독 관사는 광복 이후에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다가 지금의 청와대 본관이 들어서면서 철거됐다. 현재는 총독 관사 현관 지붕 위에 장식으로 놓여있던 절병통만 옛 자리에 놓여있다.

수궁터에는 수령이 700년이 넘는 주목이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격동의 대한민국을 바라봤을 나무인 셈이다.

수궁터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관저에 도착하게 된다. 관저는 본관과 마찬가지로 팔작지붕에 청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생활 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가 ‘ㄱ’자 형태로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으로 마당이 있다.

관저 마당 한쪽에는 사랑채인 청안당이 있으며 관저 바로 앞에는 의무실이 있다. 청안당은 ‘청와대에서 편안한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관저와 마당에서 역대 대통령들이 잠시 근심, 걱정을 잊고 마당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맞으며 쉬었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관저 뒤로 이어진 숲길로 난 데크를 통해 언덕으로 올라가면 청와대 내의 역사문화유산인 오운정과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오운정은 조선 고종 시대에 경복궁 후원에 지어졌던 오운각의 이름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오운은 ‘다섯 개의 색으로 이루어진 구름이 드리운 풍경이 마치 신선이 사는 세상과 같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판은 어린 시절부터 붓글씨에 능통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자다.

오운정 아래로는 짙은 숲이 펼쳐지고, 초록빛 나무 틈 사이로 청와대 관저와 종로 일대의 풍경이 얼굴을 내민다. 오운정을 지나 보물로 지정된 미남불로 가는 길에는 시야가 트여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포인트가 있다.

미남불은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해 9세기에 조각된 것으로, 자비로운 미소를 띤 부처님의 얼굴과 당당한 풍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교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 유물로, 생김새가 멋스러워 미남불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본래 경주에 있던 것이 총독 관사가 청와대 자리로 이동하면서 함께 이곳으로 왔다.
녹지원서 역대 대통령 기념식수 찾아보세요
상춘재는 외국 귀빈들을 맞이하는 의전 행사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사용된 한옥이다. 청와대 내에 한옥의 아름다움을 외국 손님에게 소개할 장소가 없어서 1983년 상춘재를 지었다. 외국에서 국빈이 오면 상춘재에서 만찬을 진행했다.

상춘재 위로는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침류각이 있다. 침류각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으며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왔다.

녹지원은 대통령과 국민이 만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 식수들이 곳곳에 있어 찾는 재미가 있다. 또한 녹지원에는 한국산 반송(盤松)이 있는데, 그 수령이 170년을 넘었다.

춘추관은 대통령의 기자 회견 장소이자 출입 기자들이 상주하던 곳이다. 춘추관은 고려와 조선의 역사 기록 기관이던 춘추관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언론의 자유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현재 춘추관 앞 잔디밭에는 텐트와 빈백이 놓여있어 쉬어 가기 좋다.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 행사를 열었던 건물이다. 각종 민속 공연과 만찬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쓰였다. 회의와 연회를 위한 장소로도 사용됐다.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영빈관 앞쪽의 영빈문을 통해 나가면 청와대 담장 옆에 붙어 있는 칠궁으로 갈 수 있다. 칠궁은 조선의 왕을 낳은 어머니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칠궁이란 이름은 1908년에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후궁의 사당들을 이곳으로 합치면서 모두 7개가 모였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장희빈의 신주,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 씨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궁궐의 다른 전각들처럼 규모가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검소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장소다.


청와대 일주일 누적 관람객 20만 명 돌파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에 따르면 이달 10일 청와대 개방 이후 일주일간 누적 관람 인원은 20만 명을 넘어섰다.

또 평일 경복궁 관람 인원도 지난달 동기간 대비 4배 이상 급증했다. 4월 둘째 주 관람객은 1만3986명에 그쳤지만, 5월 둘째 주 관람객은 5만7138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김 의원은 “이는 지난 3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청와대 공개의 경제적 효과’ 예상치의 3배를 웃도는 결과”라며 “방문객 숫자 뿐 아니라 생산 유발 효과, 부가가치 유발 효과, 취업 유발 효과, 지역경제 효과 등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청와대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핫플레이스가 됐다”며 “좋은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도록 문화재청과 의논하며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답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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