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템: 주술의 기호[고양이 눈썹]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0일 12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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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022년 1월
캐나다 국립공원 홈페이지
캐나다 국립공원 홈페이지


우리 전통 문화재인 장승은 북미 원주민들의 토템폴(Totem pole)과 같은 계열로 해석되죠. 원시신앙이나 주술의 상징물로서 마을 어귀에 수호신처럼 세워집니다. 물론 마을을 알려주는 독특한 상징물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몽골리안들의 공통적인 문화라는 설도 있지요.

중앙집권 체제였던 조선 시대에는 마을 고유의 토템보다는 전국적으로 비슷비슷한 모양새의 표지들이 세워졌습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으로 통일된 것이죠. 장승을 못 세울 경우 솟대가 입구 표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솟대도 전국적으로 비슷한 모양입니다.

2020년 3월
2020년 3월


지중해 문화권에는 원기둥과 오벨리스크가 있습니다. 토템과 비슷해 보이긴 하는데 의미가 다릅니다.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을 상징한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권력자의 권력 크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입니다. 이정표 역할도 없습니다. 기념비지요.

이집트관광청 홈페이지
이집트관광청 홈페이지


트라야뉴스 원기둥. 로마 황제 트라야뉴스의 다키아(현 루마니아) 원정을 기리기 위해 서기1세기 경 세워졌으며 이탈리아 로마 포로로마노에 있습니다. / 세계문화유산 홈페이지
트라야뉴스 원기둥. 로마 황제 트라야뉴스의 다키아(현 루마니아) 원정을 기리기 위해 서기1세기 경 세워졌으며 이탈리아 로마 포로로마노에 있습니다. / 세계문화유산 홈페이지


중세 이후 서구에선 이런 기념비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영웅이나 성인을 기리는 동상·석상이 이를 대신했습니다. 종교적 기호는 십자가만 남았습니다.

세종 산성교회 홈페이지
세종 산성교회 홈페이지
울산 인보 카톨릭 성당 / 건축집단ma 홈페이지
울산 인보 카톨릭 성당 / 건축집단ma 홈페이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영향이겠죠. 그래도 뭔가를 세우고 표시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요? 현대에도 대체된 형태의 토템들이 많이 보입니다.

대형 건물은 하루에도 수천~수만 명이 들락날락하는 공간, 즉 작은 도시 같은 곳이잖아요. 큰 빌딩 앞엔 ‘현대의 토템’이 있습니다. 건축법상 의무인 조형물들이 그렇습니다. 미술품을 설치해 도시미관에 기여하라는 공익 개념이죠. 이것도 왠지 토템폴의 고유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건물의 알림 표지인 셈이니까요. 21세기에도 토템폴은 꾸준히 설치됩니다.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앞 조형물 ‘해머링맨’. 조각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작품으로 독일 스위스 미국 등에 이어 7번째로 2002년 여기에 세워졌다.  동아일보DB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앞 조형물 ‘해머링맨’. 조각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작품으로 독일 스위스 미국 등에 이어 7번째로 2002년 여기에 세워졌다. 동아일보DB

서울 종로구 창신동 쌈지마당 표석 / 2022년 2월
서울 종로구 창신동 쌈지마당 표석 / 2022년 2월


서울 중구 무교동 표지 / 2022년 3월
서울 중구 무교동 표지 / 2022년 3월


지방자치 단체들도 토템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해석한 조형물들을 특정 장소에 배치해 표지 역할을 맡깁니다.

‘토템 본능’을 가장 잘 이용하는 건 역시 사업가들 같습니다. 기호를 사랑하는 습성을 마케팅으로 잘 활용하는 것이죠. 현대의 주술 기호는 브랜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최고의 질서가 된 현대사회에 권위적인 물성을 가진 상품이야 말로 숭앙의 대상이죠. 교회처럼 생긴 건물 한 가운데 베어 먹은 사과를 보시죠. 종교이자 주술 기호 같지 않나요? 이런 상점 안에 들어가게 되면 왠지 창조주, 아니 창업자의 ‘은혜’에 감사하며 세상을 뒤바꾼 피조물들을 감탄하고 찬양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 애플 홈페이지
미국 뉴욕 브루클린 / 애플 홈페이지
미국 와이오밍 / 애플 홈페이지
미국 와이오밍 / 애플 홈페이지

미국 밀워키 / 벤츠 홈페이지
미국 밀워키 / 벤츠 홈페이지


고층 건물은 현대사회가 탄생시킨 토템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토템의 초대형화 버전이죠. 우뚝 솟은 직선 모양새하며, 멀리서도 잘 보여 방향과 위치를 안내해주는 지표 역할도 해주니까요.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주술이 돼버린 배금주의(拜金主義·Mammonism)의 대표 기호로서 이 슈퍼 토템들이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응봉산에서 바라본 성수동과 잠실의 대형 건물 / 동아일보DB
응봉산에서 바라본 성수동과 잠실의 대형 건물 / 동아일보DB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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