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액자를 카메라로 비추니… 어, 작품이 보이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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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비어있는 전시’, 보기 어려운 국외소재 문화재 20점
태블릿PC 렌즈로 감상하는 방식… 톡톡 튀는 설명글로 호기심 자극
대학생들이 기획-큐레이터 참여… “MZ세대와 협업 전시 늘릴 것”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에 나오는 대사가 쓰인 액자를 태블릿PC 카메라로 비추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에 나오는 대사가 쓰인 액자를 태블릿PC 카메라로 비추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전시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액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액자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여주인공 ‘가고메’의 대사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던지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태블릿PC 카메라를 액자에 비추자 화면에 그림이 뜬다. 15세기 후반, 16세기 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가출가도’다.

화면에 뜬 그림 ‘석가출가도’.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화면에 뜬 그림 ‘석가출가도’.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출가한 석가모니가 산속에서 머리를 깎고 있고, 궁궐의 부모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장면이다. 속세를 뒤로하고 떠나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MZ세대에게 익숙한 문구와 연결한 것.

이달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2층 전시관에서 열리는 ‘비어있는 전시’는 이처럼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재재단과 광고회사 TBWA코리아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액자에 적힌 문구들은 AR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해외 박물관들의 협조를 받아 팬데믹으로 보기 어려운 국외 소재 문화재 20점을 감상할 수 있다.

석가출가도는 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는 19세기 조선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가성비 갑 사당’이라고 적힌 액자를 비추면 이 그림이 뜬다. 감모여재도는 조상신이 머무는 사당(祠堂)을 그린 것으로, 사당을 지을 여유가 없던 당시 서민들이 그림으로라도 사당을 지어 조상을 모시고자 했음을 엿볼 수 있다. 건축비를 들이지 않고 그림으로 사당을 대체했다는 점에 착안해 ‘가성비 갑’이라는 문구를 달았다.

전 세계에 몇 점 없는 희귀 고려 불화도 볼 수 있다. ‘어떤 소원이든 빌어보살’이라는 문구의 액자를 비추면 미국 워싱턴 프리어·새클러 미술관 소장품으로 14세기 중반에 그려진 ‘수월관음도’가 나온다. 푸근한 얼굴에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진 관음보살이 근엄한 표정으로 왼쪽의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간절한 표정의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에게 소원을 빌고 있는 것 같다는 상상을 더해 재밌는 문구를 넣었다.

액자에 들어가는 톡톡 튀는 감상 문구들은 모두 대학생 참여자들의 아이디어다. 이들은 전시기획 등 큐레이터 역할도 일부 맡았다. 전시에 참여한 대학생 이소운 씨(21)는 “대학생에게 문화재는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이라며 “작품들을 젊은 세대의 관점으로 해석한 문구를 통해 문화재에 대해 젊은 세대가 느끼는 심리적 장벽이 낮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MZ세대와의 전시 협업은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김한태 한국문화재재단 콘텐츠기획팀장은 “MZ세대의 기획을 통해 신선한 전시가 나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이들과 협업해 문화재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채널을 추가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비어있는 전시#한국문화재단#태블릿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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