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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女신과 여神… 그 사이를 가른, 또는 메운 인간의 욕망들

입력 2021-08-07 03:00업데이트 2021-08-0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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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역사/베터니 휴즈 지음·성소희 옮김/232쪽·1만7000원·미래의창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오늘날까지도 각종 콘텐츠에 영 감을 주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미래의창 제공

사랑과 성애의 여신 비너스, 그리고 원죄 없는 성스러운 여인 성모 마리아.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존재가 실은 이어져 있다면? 40년간 여신의 자취를 따라 그리스 신전과 중동 발굴 터, 폼페이의 가정집 등을 현장 조사한 저자는 “인간의 다양한 사랑을 관장하는 여신은 변신을 거듭했다”고 말한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여신을 원하고 상상하며 사랑해온 인간이 상반된 이미지의 두 여신을 탄생시켰다는 것.

그리스어로 아프로디테라 불리는 비너스의 전신은 아스타르테다. 잦은 전쟁으로 30세가 되면 대부분 죽음을 맞은 청동기시대에 전쟁과 열정, 난폭함, 죽음을 상징하는 여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메르에서는 이난나,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활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로 묘사된 아스타르테는 가장 빛나는 별인 금성(venus)으로 상징되었다. 기원전 680년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에사르하돈은 자신을 배신한 자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이렇게 말했다. “별 가운데 가장 밝은 별인 금성이 네놈들의 아내가 적의 품에 누워 있는 걸 눈앞에서 보게 하시길.” 저자는 아스타르테가 선박의 뱃머리에 그려졌다는 점에서 바다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빌론 지역에서 발견된 아스타르테의 조각상을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이 아스타르테를 뿔이 달린 모습으로 상상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왼쪽 사진). 프락시텔레스가 조각한 관능적인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이후 옷이 벗겨진 아프로디테가 본격적으로 조각되기 시작했다(오른쪽 사진). 미래의창 제공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은 기원전 8세기경 쓰인 그리스 음유시인들의 작품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일부 그리스인은 바다의 거품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프로스’에서 아프로디테의 이름이 유래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스타르테의 페니키아식 이름인 ‘아스테로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아프로디테의 탄생으로 여신은 성애와 욕망, 기쁨과 사랑에서 더 나아가 관계와 화합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여성과 남성, 극작가와 철학자를 하나로 묶는 우주적 힘이 아프로디테에게 있다고 여겨졌다. 이처럼 친교를 상징하다 보니 아프로디테를 매춘부의 여신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고대 로마 초기 문인 엔니우스는 “비너스는 원래 매춘을 처음 고안한 여성이었으나 나중에 여신으로 숭배받게 됐다”는 주장을 폈다.

기독교가 서구사회를 지배하면서 아프로디테는 성적 특성만이 강조된 존재로 변질됐다. 하지만 4000년을 버틴 여신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저자는 “아프로디테는 동정녀 마리아의 외피를 두르고 재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지중해 국가 키프로스 중부의 파나기아 트로오디티사 수도원에는 성모 마리아가 축복을 내렸다는 허리띠가 보관돼 있다. 이 수도원의 또 다른 이름은 파나기아 아프로디티사. 애초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진 이 공간에 보관된 허리띠 역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의 허리띠와 흡사하다고 한다. 또 마리아의 수태고지 순간을 그린 중세 회화 작품들에는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끼는 비둘기가 함께 그려져 있다.

인류가 상상한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이 이토록 변화무쌍했다는 게 흥미롭다. 하지만 창녀와 성녀를 넘나드는 여신의 이미지는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도 읽힌다. 여신의 역사를 통해 인간 욕망의 일대기를 훑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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