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팬데믹 시대, 인간다움을 금하다

전채은 기자 입력 2021-06-26 03:00수정 2021-06-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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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인간/조르조 아감벤 지음·박문정 옮김/200쪽·1만5000원·효형출판
‘의료 종교’ ‘기술·보건적 독재주의’ ‘상시화한 긴급 상황’ ‘생명 정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팬데믹 사태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이들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이해하기에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는 종교화됐다. 현대 기술과 보건이 사회를 장악하는 힘은 독재 수준이다. 정부의 행정권은 긴급 상황이라는 명분하에 입법권을 넘어선 지 오래. 정치는 인류의 생존 외에 다른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뤄진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인 저자의 주장은 일견 이상하고 위험하다. 그는 팬데믹 사태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이탈리아 정치·문화 비평 웹사이트 ‘쿠오드리베트’에 팬데믹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유럽에서 날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방역이라는 명분하에 인간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무시와 조롱을 당하기 일쑤였다.

저자는 근대 국가의 정치가 생물학적인 생명만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질적으로 나은 생명, 삶에 대한 고찰 같은 부분은 사소하게 취급해왔다고 주장한다. 죽은 사람의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도 4.5m의 거리를 둬야 하는 삶, 가차 없이 학교의 문을 닫는 삶, 이웃이 지워진 삶…. 그가 보기에 코로나 시대의 인간은 스스로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라고만 여기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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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표정으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얼굴로 진실을 드러낸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얼굴은 정치적 공간이다. 팬데믹이 몰고 온 마스크와 함께 사람들은 얼굴을 잃었다. “시민의 얼굴을 가리기로 결정한 국가는 정치를 스스로 없애 버린 셈”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의 주장은 지금보다도 더 촘촘하고 정교한 방역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가 보기에 다소 이상한 시각이다. 그가 강조하는 인간성이나 삶에 대한 고찰이 정말 생명보다 더 중요한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다만 접촉을 멈추고 얼굴을 가리는 삶을 이어가더라도 우리가 그 대가로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알아두는 것은 무척 중요해 보인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팬데믹#인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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