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나의 힘” 고유 세계 구축한 조선의 문장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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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 ‘18세기 개인의 발견’
신유한-조귀명-유한준-이용휴 등 주목받지 못한 문장가의 삶 조명

“왼쪽으로 바라보니 큰 바다가 푸른 하늘에 맞닿아 천하에 아무것도 내 눈을 가리는 것이 없었다. (…) 생각해보면 구주(九州) 안의 백공 만물, 고금의 서적, 사마천이 구경했다는 것과 초나라 좌사가 읽고 기록한 것이 탄환처럼 조그마한 것이었다.”(해유록)

조선의 문장가 신유한(1681∼1752)은 1719년 일본 대마도의 항구 서박포에서 출항한 배 위에서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서 겪은 일을 쓴 ‘해유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조선 기행문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다. 신유한은 어린 시절 서당 선생이 책 읽는 소리를 듣고 글을 깨칠 정도로 타고난 문재(文才)였다.

하지만 그는 큰 뜻을 펼치지 못하고 평생 하급관리로 전전했다. 지방의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이었다. 동시대 문인들은 신유한이 구사한 독특한 문장이 괴이하고 난해하다며 비판하기 일쑤였다. 이 시절 그가 느낀 서글픔은 ‘목멱산기’ ‘청천집’ 등의 저서에 절절한 문장으로 남았다.

당대의 주류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문장을 추구한 조선 문장가들을 조명한 시리즈가 최근 글항아리에서 발간됐다. ‘18세기 개인의 발견’(사진) 시리즈는 저마다의 결핍을 문학으로 승화한 신유한, 조귀명(1693∼1737), 유한준(1732∼1811), 이용휴(1708∼1782)의 삶을 다뤘다.

일곱 살에 스스로 한문을 깨친 조귀명은 병약하게 태어난 탓에 평생 방에서 그림과 문학, 종교를 탐구하며 살았다. 방대한 공부량은 타고난 문장력과 결합돼 독특한 문학세계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내건 조선에서 유불도의 통합을 추구한 그의 철학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집 ‘동계집’과 문학 작품 ‘오원자전’은 그의 독특한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문집 ‘저암집’과 ‘자저’를 남긴 유한준은 스스로 사대부이면서도 부패한 사대부를 앞장서 비판한 인물이다. 문우(文友)였던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비판했지만, 유한준은 거침없는 직설을 글로 담아 지배층의 미움을 샀다.

28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하지 않고 문학에만 전념한 이용휴는 몰락 가문의 후손이었다. 큰아버지가 왕에게 직언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문을 받다 숨진 사건을 계기로 그는 평생 재야의 문인으로 살았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스스로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으로 시대와 맞선 이들의 삶은 매일 각개전투를 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조선의 문장가#고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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