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시인이 바라본 ‘배민 라이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7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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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길이다 청량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 / 별의 여왕에게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마법의 라면을 배달하러 / 페가수스 별자리를 향해 일만 광년의 속도로 질주한다.’

지난해 여름 주창윤 시인(58)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달의 민족’을 통해 수많은 음식을 시켜먹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더운 날씨 때문에 식당에서 식사하기 꺼려졌기 때문이다. 두꺼운 옷을 입고 헬멧을 쓴 채 땀에 절어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 기사를 만날 때마다 관찰하고 상상했다. 그들이 출발한 곳은 지구지만 도착지는 우주처럼 머나먼 우주가 아닐까. 허기질 때마다 끊임없이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소비자는 영원히 배부른 존재가 아닐까. 그가 18일 펴낸 시집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한국문연)와 같은 이름의 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주 시인은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배달을 시킨 소비자로선 빠른 배달을 원하면서 배달을 시키지 않았을 땐 배달이 추구하는 속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복잡한 심리를 지녔다는 것. 그는 “배고플 때 배달이 오지 않으면 짜증이 나지 않나. 반면 배부를 때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탄 배달 기사들이 과속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모든 시는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해 썼다. 현미경처럼 한 부분에 집중하다보면 시가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 퀵서비스 기사가 넘어지는 사건을 본 경험으로 쓴 ‘사거리에서 넘어진 오토바이 / 바퀴는 계속해서 헛돌고 / 쓰러진 퀵서비스 맨은 일어나지 못한다’(‘추석을 배달하는 퀵서비스 맨’ 중)처럼 건조한 묘사가 특징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도로에서 나는 사고를 한번 씩 보지 않나. 사고를 본 뒤에 머리 속에 장면을 남긴 뒤 옮겨 적었다”고 했다.

그는 “일상적인 언어를 쓰는 이유는 시대상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요즘 시는 너무 어렵다. 시대를 읽어내지 못한다”며 “간결한 언어를 쓰면서 세상을 다루겠다는 시 창작 방법을 미리 정해두고 작품을 썼다”고 했다. 그는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로서 문화 흐름을 연구하는 학자”라며 “새로운 트렌드를 연구하다보니 배달 문제처럼 시대의 예민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관찰은 종종 시적 허구로 이어진다. 주 시인은 지난해 여름 출근길에 자신의 아파트 현관계단에서 쿠팡맨을 만나고선 ‘7과 1/2층은 어디에 있나요? / 엘리베이터를 7과 8층 사이에 세워 두고 / 그 틈을 자세히 보면 / 깊은 터널이 나오죠’(‘쿠팡맨의 과로사’ 중)를 썼다. 그는 “어쩌면 쿠팡맨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7과 1/2라는 목적지를 헤매는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썼다”며 “배달 기사들처럼 우리 모두 속도의 세계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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