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건물 지으려고 헌 건물 철거해선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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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커상 수상 佛 라카통-바살
나무들 잘라내지 않고 집 짓고, 주민 퇴거 없이 아파트 리모델링
“최소 작업으로 문제 해결” 심사평

1993년 프랑스 남부 플루아라크에 완공한 라타피 하우스. 자연 환기와 차양, 식물을 활용해 실내 환경을 조절하도록 했다. 설계자인 안 라카통(아래 사진 왼쪽)과 장필리프 바살은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사진 출처 pritzkerprize.com
1993년 프랑스 남부 플루아라크에 완공한 라타피 하우스. 자연 환기와 차양, 식물을 활용해 실내 환경을 조절하도록 했다. 설계자인 안 라카통(아래 사진 왼쪽)과 장필리프 바살은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사진 출처 pritzkerprize.com
“새 건물을 짓기 위해 헌 건물을 철거하거나 나무를 잘라내서는 안 된다. 이미 그곳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북돋우는 것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다.”

건설업자들에게는 턱없는 소리로 여겨질 주장을 30여 년 동안 관철해 온 프랑스 건축가 듀오가 세계 건축계의 최고 영예인 프리츠커상을 받는다. 1979년 이 상을 제정한 미국 하이엇재단은 16일(현지 시간) “안 라카통(66)과 장필리프 바살(67)을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라카통은 스위스 연방공대 교수, 바살은 독일 쿤스트베를린대 교수다.

건축가들의 작업 포트폴리오에서 흔히 보이는 멋들어진 건물 사진을 두 사람의 사무소 홈페이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건물 외형의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쾌적하고 편리한 생활 여건을 확충하는 작업에만 집중해 왔다.

가장 특징적인 사례는 2014∼2017년 건축가 크리스토프 위탱과 공동으로 진행한 보르도 그랜드 파크 인근의 아파트 리모델링 프로젝트다. 1960년대에 지어진 이 아파트 3개 동의 530여 가구 주민들은 낡은 건물 표피를 걷어내고 개방된 테라스를 덧붙여 내부 공간을 확장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라카통은 “건물 철거가 논의되는 경우 현장을 방문해 거주자를 만나 의견을 듣는다”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 계획 첫 단계에서 현 거주민을 치워내야 할 요소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업무 방식이다.

2012년 완료한 파리 팔레 드 도쿄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는 1937년에 지어진 건물의 골조를 유지한 채로 최소한의 재료를 더해 내부 공간을 확장했다. 1998년 프랑스 서남부 카프페레에 신축한 개인주택은 대지에서 자라고 있던 40여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는 대신 건물을 나무들 위로 올려 지어 환경 변화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심사위원단은 “두 사람의 건축 프로젝트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잠재적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최소한의 재료와 작업만을 덧붙여 사려 깊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의 작업은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에 머물지 않음을 알려준다”고 평했다. 바살은 “우리는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건물의 겉모습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공간의 목적에 초점을 맞춰 안쪽으로부터 디자인한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프리츠커상 수상#건설#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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