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사람이 읽는 법]“결혼하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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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지음/280쪽·1만4800원·위즈덤하우스

26일 여성가족부가 비혼이나 동거도 정부 정책에서 가족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표할 때 이 책이 문득 떠올랐다. 결혼하지 않은 성인 여자 두 명이 아파트를 함께 구입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로, 2019년 2월 출간 직후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아직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실험이 가능할까.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여자 둘이서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김하나 작가(45·여)는 19세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대부분의 기간 홀로 자취했다. 처음엔 혼자 사는 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은 점점 바뀌었다. 누군가와 밥과 찌개를 차려먹는 일상이 그리워진 것. 한 여자를 알게 됐고 함께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에 이른다. 만족도는 최상.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한집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누그러진다. 서로의 인기척에 자연스레 잠이 깨고 집에서 매일같이 인사가 오가는 게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김하나)

동거인 황선우 작가(44·여)는 18세부터 서울에서 홀로 살았다. 고깃집에 가서 혼밥을 하는 건 기본일 정도로 홀로 사는 삶에 익숙하다. 결혼에 대해서도 큰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김 작가와 살기 시작하면서 함께 사는 인생의 소중함을 깨달아 간다. 동거인을 ‘사회적 안전망’으로도 인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고 있다. 나는 동거인에게서 배워간다.”(황선우)

함께 사는 일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들은 자주 싸운다. 서로의 물건이 많다고, 빨래를 너무 오래 안 개켰다고 싸운다. TV에 매일 부부들이 싸우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 우정이 가득한 친구라는 점만 빼곤 그들은 부부와 다를 게 없다. 화해의 방법도 같다.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네 마리의 귀여운 고양이를 핑계로 서로에게 말을 건네 보는 것. 함께 아는 친구를 불러 다 같이 술을 마시며 고주망태가 되어보는 것.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 있지 않아 이별을 가끔 생각하곤 한다. 함께 사는 아파트의 처분 방법을 혼자 생각하다가도 “우리에게도 끝이 언젠가 오겠지만 최대한 미루고 싶다”며 고개를 젓는다. 새벽녘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면 환자와의 관계에 ‘지인’으로밖에 쓸 수 없는 현실에는 조금 씁쓸해한다. 둘은 책을 끝내기 전 사회제도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인다.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다채로운 가족들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질 때, 그 집합체인 사회에도 행복의 총합이 늘어날 것이다.”(황선우)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책의 향기#비혼#비혼가족#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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