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허시먼은 실용적 이상주의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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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허시먼/제러미 애덜먼 지음·김승진 옮김/1256쪽·5만5000원·부키

앨버트 허시먼(1915∼2012)은 보수(혹은 반동)의 수사학을 분석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언뜻 정치학자나 사회학자처럼 보이지만, 분배기능이 경제발전의 동력일 수 있다는 ‘터널이론’이나 1960, 70년대 제3세계(저개발국)의 개발경제론으로 이름난 경제학자다. 그가 수학이론을 사용하지 않아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지 못했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이 책은 프린스턴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가 쓴 허시먼 평전이다. 영어 원제 ‘세속의 철학자: 앨버트 허시먼의 오디세이’에서 드러나듯 허시먼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공부에만 몰두한 학자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독일 베를린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10대 후반에 반(反)나치운동을 벌이다 독일을 탈출했다. 스페인 내전 때는 반파시즘 진영에서 싸웠고 미국으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으로 참전했다. 이후 경제학자로 미국 정부에서 전후 유럽부흥계획인 마셜플랜을 다듬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에 휘말려 콜롬비아 보고타로 떠나 남미 개발계획 작성에 힘을 보탰다. 1970년대 남미 독재에 좌절하기도 했다. 허시먼은 혁명과 반혁명,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같이 시대와 역사를 초월해 적용 가능한 유토피아적 거대담론과 계획을 경계하고, 그 사이에 개혁의 영역이 있다고 확신한 실용적 이상주의자였다. 그에게 개혁은 무성한 논쟁과 갈등 속에서 ‘인류를 조금 더 낫게 만들겠다는 열망’이 추동해 변화해 나가는 것이었다.

진보주의자에 반자본주의자로도 알려져 있지만 허시먼은 ‘경직되고 비타협적인 형태의 주장들이 선택지와 대안의 범위를 좁혀 버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한 급진적 점진주의자였다. 그에게 한 사회의 민주적 수준은 ‘자신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집단들이 열린 대화를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앨버트 허시먼#제러미 애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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