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 사회의 평화는 ‘자기 길들이기’의 결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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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인간 본성의 역설/리처드 랭엄 지음·이유 옮김/480쪽·2만2000원·을유문화사

인간은 자기 종족을 공격하는 비율이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에 비해 현저히 낮지만 전쟁이나 숙청 등으로 종족을 몰살해 왔다. 저자는 이런 특징이 진화적 선택에 따른 ‘자기 길들이기’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인간은 자기 종족을 공격하는 비율이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에 비해 현저히 낮지만 전쟁이나 숙청 등으로 종족을 몰살해 왔다. 저자는 이런 특징이 진화적 선택에 따른 ‘자기 길들이기’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인간이 다른 개체에 가하는 폭력은 다른 동물 종(種)에 비하면 적다. 아프리카에 사는 유인원 친척들에 비해서도 1%에 못 미치는 정도다. 그러나 인간은 전쟁과 숙청 등을 통해 같은 종을 무참히 살육해 왔다. 이런 이중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야생 영장류를 연구해왔고 하버드대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한 저자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간다. 풍부한 예시와 해설이 들어있지만 줄거리는 간명하다.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 길들이기, 사형(死刑) 가설 같은 몇 개의 핵심 개념을 머리에 넣은 뒤에는 책의 전체 구도가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반응적 공격이란 ‘화가 나서’ 하는 공격이다. 누군가 내게 욕을 할 때 내 주먹이 나간다면 반응적 공격이다. 주도적 공격은 사전에 계획해서 하는 공격이다. 높은 인지 능력이 필요하며, 막상 공격 시점에서는 침착한 상태일 때가 많다.

길들이기라는 말에서는 가축이 연상된다. 늑대와 개를 비교하면 알 수 있듯이, ‘길들이기 된’ 모든 종은 야생보다 몸이 작고 얼굴이 짧으며 놀랍게도 뇌도 약간 작아진다. 암수 차이는 야생에서보다 줄어든다. 여러 세대에 걸친 인위적 선택의 결과다. 현생 인류는 길들이기 된 종의 이런 특징들에 딱 들어맞는다. 경쟁 종이었던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하면 더욱 명백해진다. 진화 과정에서 스스로를 ‘길들인’ 것이다.

길들여진 종은 유순해진다. 즉, 반응적 공격이 줄어든다. 그 이유를 탐구하는 데서 이 책의 논지는 새롭다. 가축을 길들일 때는 공격적인 개체를 배제하거나 죽이고 ‘더’ 유순한 암수를 교배시킨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이 과정에 등장하는 것이 사형 가설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들은 규범을 파괴하거나 공격적인 자들을 제거해 왔다. 그 결과 유순하고 반응적 공격을 자제하는 오늘날의 인류가 남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전에는 2년 전 타계한 미국 생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의 ‘평판 가설’이 있었다. 평판 좋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유전자를 후손에 남길 가능성도 높으므로 인류는 덜 공격적으로 진화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도 이 설명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 분석에 자신의 사형 가설을 더해 상황을 더 정교하게 설명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응적 공격은 적은데 어떻게 인간이 높은 레벨의 주도적 공격 수준을 갖게 되었을까. 이 점 역시 ‘공격적이고 규범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과 관계된다. 공격적인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인간은 언어로 모의했고, 연합을 꾀했다. ‘주도적인 연합 공격’은 처형과 전쟁, 학살, 노예제, 약탈, 숙청을 낳았고 사회적 처벌로서 시민사회의 기반이 됐다. 나아가 자신이 처단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집단의 규범에 대한 순응, 즉 도덕성을 강하고 정교하게 진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 책이 ‘사형존치론’에 대한 근거로 사용될 것을 염려하며 현대에는 사형제가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명백히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난폭했던 과거를 소중히 한다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잔인한 조상들에게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진화심리학은 인간 행동과 사회 양태를 설명하는 데 깊은 통찰을 주면서 기존의 설명 도구들을 대체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한편으로 논지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 책은 이런 미덕과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리처드 랭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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