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범고래 “내가 살인고래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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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오스카르 아란다 지음·김유경 옮김/317쪽·1만5000원·동녘

범고래의 영어 명칭은 살인고래(Killer Whale)다. 무서운 이름이지만, 범고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야생에서 범고래는 엄격한 사회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며 생존이 아닌 목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죽이지 않는다. ‘범고래 포비아’는 이름을 무신경하게 지은 탓에 대물림되고 있는 편견이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대충 이름 붙여지거나 홀대당하는 동물들은 이뿐이 아니다. 멕시코 생물학자이자 바다거북 파수꾼으로 알려진 저자는 야생 동물 보호 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자연의 신비와 흥미진진한 동물들의 세계를 풀어냈다. 문어, 집게벌레, 나비, 갈매기, 좀벌레, 반딧불이 등 그가 관찰한 생물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난다.

저자는 태평양 산호초 물고기 개체수를 조사하기 위해 잠수한 사이 자신을 ‘관찰’하고 ‘조사’하는 문어를 만났다. 어린 문어는 이윽고 은신처에서 빠져나와 저자가 들고 있던 연필, 철판뿐 아니라 손까지 빨판으로 부드럽게 더듬는다. 달팽이, 조개의 친척인 이 무척추동물은 통념과 달리 신비스러운 지능을 갖추고 있다. 문어는 뇌가 아홉 개, 심장은 세 개다. 침팬지나 돌고래보다 더 복잡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멕시코 반데라스만에서 우연히 목격한 잔인한 사건은 그의 삶을 바꿨다. 알을 낳기 위해 수천 km를 헤엄쳐 온 바다거북이 매일 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죽어가고 있었다. 산란기에 밤새 해변을 감시하며 부화를 도운 그의 운동은 각국 언론에 알려졌다. 인간이 바다거북의 신비로운 여행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다. 저자는 이들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할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근본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결혼식을 몇 시간 앞두고 부상당한 갈매기를 발견해 치료하다가 서로 교감했던 일, 얼굴에 침을 뱉으며 약을 올리던 침팬지 무리와 오랜 기간 함께하며 결국 유대 관계를 맺게 된 과정, 악어에게 몇 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던 사연, 말벌에게 목젖을 찔려 구토했던 상황 등 야생을 탐험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이 유쾌하게 소개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누가 내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오스카르 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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