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불로 별을 대적한다고? [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8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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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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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질 듯한 여름날 밤, 까막까막 날던 녀석 중 하나를 잡아 사정없이 꼬리를 뗀다. 그러고는 얼굴에 쓱 문지르면, 영락없이 불 달린 도깨비가 된다. 눈치챘겠지만 그 불은 개똥불, 표준어로는 ‘반딧불’이다.

한때 반딧불과 반딧불이를 두고 ‘반딧불이’는 곤충 이름이고, 그 곤충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이 ‘반딧불’이라는 주장이 세를 얻기도 했다. 지금은 어떨까.

반디, 반딧불, 반딧불이, 개똥벌레 모두 같은 말이다. 이 중 반딧불만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과 ‘반딧불이’의 뜻으로 함께 쓸 수 있다. 즉 반디와 반딧불이, 개똥벌레는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으로 쓰지 못한다는 말이다.

‘개똥불로 별을 대적한다’란 말이 있다. 개똥불은 경남과 충북 지역에서 쓰는 ‘반딧불’의 사투리로, 개똥벌레의 꼬리 불이다. 상대가 어떤지도 모르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 꽁무니 불을 별빛과 같다고 여기다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꼴이다.

하룻강아지의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하릅강아지’가 변한 것으로 본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하릅’은 한 살 된 소, 말, 개 등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하릅강아지는 ‘한 살짜리 강아지’다. 한 살짜리 강아지가 범에게 덤빈다고? 결과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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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무모한 곤충은 또 있다. ‘사마귀’나 ‘오줌싸개’로 더 잘 알려진 ‘버마재비’다. 요 녀석, 중국 제나라 장공(莊公)이 사냥을 나가는데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멈추려 들었단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다. 강한 상대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걸 일컫는 말이다. 시골에서 살아본 분이라면 사마귀가 긴 앞다리를 치켜들고 꼼짝 않고 곧추서서 무섭게 생긴 두 눈을 굴리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허나 반딧불이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말이 떠오른다. 중국 진나라 차윤(車胤)이 반딧불을 모아 그 불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이 겨울밤에 눈빛에 비추어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螢光燈)의 불빛과 형설지공의 ‘형’도 반딧불 아닌가. 옛날 선비들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나 반딧불로 공부하는 셈이다. 이 좋은 가을날, 책 향기를 마음에 그득 담아보자.

반딧불이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밤하늘을 나는 것들은 모두 수컷이다. 암컷은 하나같이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눌까. 암컷이 풀숲에서 사랑의 신호를 보내면 사방팔방 떼 지어 나부대던 수컷들이 살며시 다가간다나 어쩐다나.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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